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선사는 조선 후기 선조 시대에 활동한 선승으로, 선의 여가에 사로잡혀 선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문인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초의대선사는 정조 10년(1786) 4월 5일,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초의대종사로서,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이곳에서 불경을 익히고 나중에는 영암의 월출산에 올라가서 선의 논지를 밝히는 일을 하였다. 초의대선사는 대흥사를 떠나지 않고 경전을 배우고 범자를 익혀 경전에 통하고, 또한 탱화를 잘 그려서 당대 오도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청도 잘하여 조사 스님들을 모신 대광명전과 보련각을 짓고 손수 단청을 해서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초의대선사는 선과 문학분야에서 뛰어나며, 그의 선과 문학적 업적은 매우 풍부하다. 초의대선사는 일지암을 중건하고 수행처로 삼았다. 스님은 이곳에서 선의 논지를 밝힌 초의선과와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했고 차문화 부흥을 위하여 동다송과 다신전을 펴냈으며 이밖에도 많은 시서와 문집을 남겼다.
초의대선사는 선문화와 차문화를 함께 발전시키는 일을 하였다. 그는 차문화 부흥을 위해 동다송과 다신전을 펴냈으며, 이들은 그의 차문화 관심과 향수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또한 초의대선사는 선과 차뿐만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는 일지암문집과 일지암시고를 남기며, 이들은 그의 문학적 업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초의대선사는 예서를 잘 쓰기로 유명하였다.
초의대선사는 그의 초심을 잃지 않고 평생 선과 문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선문학과 차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그의 선문학적 업적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의대선사는 그의 삶을 바치며 조선 후기 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의선사탄생지 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