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형제의 상'이라는 동상이 하나 있다. 6.25전쟁 당시 형제가 서로 적이 되어 전장에서 만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동상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철모를 쓰고 카빈총을 메고 있는 사람이 국군 장교인 형 박규철이고, 인민군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어린 사람이 동생 박용철이다. 둘은 강원도 원주의 치악고개 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이들 형제는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에서 태어났다. 8.15 해방 직후 부모님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일당은 지주 계급인 아버지를 체포하여 심한 고문을 하고 과수원을 몰수해 버렸다.
이에 장남 박규철은 원한을 품고 남한으로 내려와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에 가입했고,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등상사로 참전했다. 자신의 소대장이 부상으로 후송되자 박규철은 소위로 승진하여 대신 소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고향 황해도에 남아 있던 동생 박용철은 인민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북한군 하전사로 참전했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 날, 형 박규철은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나 “불효 자식 놈”이라고 호통을 쳤고, 그는 꿈에서 깨어나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원주의 치악산 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 제8사단 16연대 소속의 박규철 소위가 이끄는 국군이 인민군을 추격하는데, 5~6m 전방에서 도망치던 어린 나이의 인민군 하나가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북한군 제8사단 38연대 소속의 하전사 박용철이었다.
박규철 소위는 인민군 병사를 생포하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죽이지 않을 테니 도망가지 말라.” 어린 북한군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가 바로 동생 박용철이었다. 박규철 소위는 “너 용철이 아니냐?”고 소리치자, 용철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은 뒤따라가며 “용철아, 나야, 니 형이야! 형.”이라고 소리쳤지만, 동생은 계속 도망쳤다. 순간 그 인민군 하전사는 나무뿌리에 걸려 쓰러졌다.
어린 용철은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형이 몸을 날려 동생을 덮쳤다. 그리고 “너 용철이지?”라고 하자, 그 소년병은 “네”라고 대답했다. 박규철은 “내가 니 형 규철이라고 하는데 왜 도망쳐?”라고 했다. 동생은 형을 알아보았다.
형제는 서로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형은 동생을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박규철 소위는 소대원들에게 이 인민군이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말했다. 이에 소대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두 형제의 만남을 축하해 주었다.
최동식 6.25 참전유공자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동생을 발견한 박규철 소위는 달려가 동생을 끌어안았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고 그 주위의 전우들 모두가 한참 동안이나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이후 동생 박용철은 형이 소속한 부대의 배려로 국군으로 현지에서 입대해 형과 함께 근무했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다시는 이들 형제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동상 하나가 오늘도 서울의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