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여옥’

전명희

나는 삼천여 년 전 인간 ‘여옥’이다. 봄빛을 따라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 다 없어지는 그런 이름다운 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마을은 강여울이 휘돌아 감는 너른 들판에 푸른 보리가 일렁이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해지는 줄 모르고 일하는 곳이다. 내 남편은 뱃사공이다. 나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저 강을 건너 주는 뱃사공의 아내다. 남편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애틋한 사연 하나쯤 갖고 저 강을 건넌다.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는 슬픔을 안고 살고 또 누구는 기쁨에 겨워 살고 또 누구는 죽지 못해 산다. 사람은 누구나 미완성의 서사를 엮어가면서 살아간다.

 

우리 마을은 난하를 동쪽으로 두고 있고 요하를 서쪽으로 두고 푸른 강물이 젖줄처럼 흘러가는 살기 좋은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터인 조선진에 와서 배를 기다리곤 한다. 하얀 머리의 백두산에서부터 달리고 달려 내려오는 물이 오리머리빛과 같이 푸르고 푸르게 흐르고 흘러 우리 마을 나루터에서 잠깐 쉬다가 다시 흘러서 바다로 간다. 이 아름다운 푸른 강을 둔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사람을 귀히 여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좋은 일이 있으면 서로 나누며 사는 마을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우리 조상의 처음인 단군이 태어나신 것도 같은 이치라고 배웠다. 곰과 호랑이가 하늘님을 찾아와서 사람이 되기를 청했는데 하늘님은 마늘과 쑥을 먹으며 7일씩 3번 21일을 견디라고 했다. 호랑이는 포기하고 곰은 21일 견디고 사람이 되어 우리 조상의 조상, 그 조상의 처음인 단군을 낳았다. 우리 마을은 그런 축복이 가득한 땅이다. 그 땅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내 남편은 그 강에 나룻배를 띄워 사람들을 건네주는 뱃사공이다.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내 남편은 강으로 갔다. 남편이 나루터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강기슭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새벽부터 술을 마셨는지 비틀비틀하며 위태롭게 강으로 들어갔다. 그의 아내가 소리소리 지르며 그 남자를 말렸다. 그의 아내는 이미 반 실성해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남자는 더 깊이 강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는 물속으로 빠져 죽고 말았다. 

 

그 남자의 아내는 슬픔을 가눌 길 없었다. 말릴 틈도 없이 자기 눈앞에서 죽은 남자를 위해 노래를 지어 공후로 연주했다. 여인이 타는 공후의 소리가 어찌나 슬프고 애잔한지 강물도 그 소리에 잔잔하게 울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이별은 여인의 눈물을 앗아가고 살아갈 힘도 빼앗아 가버렸다. 나의 남편은 여인이 타는 공후 소리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연주를 마친 여인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강물은 남자와 여인의 한을 싣고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러가고 있었다.

 

남편은 집에 와서 나에게 그 남자와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찌나 해석하고 안타까운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나도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사는 게 무엇인지 죽음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그 남자를 삼킨 저 강물 위에는 햇살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가없는 남자의 죽음은 다시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여자가 공후를 타며 읊었다는 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여인의 환영이 내 속으로 들어와 온종일 눌러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여인의 슬픔이 내 마음속에서 또 다른 슬픔을 만들어내며 나를 깊은 혼돈 속으로 자꾸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공후를 가져와 여인이 부른 소리를 따라 불렀다. 공후 소리는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공후 소리를 듣고 몰려들었다. 내가 공후를 켜는 것인지 공후가 나를 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몰려든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강물에 뛰어들어 죽은 남자의 슬픔도 슬픔이지만 그 슬픔을 이길 수 없어 자신마저 강물에 뛰어든 여인의 슬픔이 자신의 슬픔인 양 마을 사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공후를 켜는 내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공후의 구슬픈 음을 타고 그 여인의 부른 슬픔의 노래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통해 다시 저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임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평소 내가 켜는 공후 소리를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던 마을 사람들은 마치 죽은 여인의 한이 찾아와 함께 부르는 소리와 같아 더 슬프다고 말했다. 강물은 지금도 여전히 흐르건만 떠난 남자도 그 남자의 여인도 사라지고 없는 지금, 공후를 타고 흐르는 나의 노래만 애달프게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슬픔의 힘은 기쁨의 힘보다 더 강력한가 보다. 나의 노래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저 마을에서 또 건넌 마을로 소리 없이 퍼져 나갔다. 그렇게 퍼져 나간 나의 노래는 ‘공무도하’라는 이름을 달고 이웃 나라까지 펴져 나가서 많은 사람의 가슴에 슬픔의 비를 내렸다. 지금도 저 강나루에 서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06.12 11:48 수정 2023.06.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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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