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참산 성원사
스님은 보이차를 몇 번이나 우려냈다. 탁한 찻물이 빠지고 가을하늘을 닮은 맑은 찻물이 찻잔을 채웠다. 물 끓는 소리가 주전자 밖을 슬금슬금 기어 나와 스님의 잿빛 옷자락에 달라붙었다. 나는 창문 너머로 하늘을 차고 올라오고 있는 저녁달을 바라보며 스님이 따라준 보이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를 마시기 위해 담을 나누는 것인지 담을 나누기 위해 차를 마시는 것인지 나는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 차로 도를 이룬다는 ‘다도’는 내게서 너무 멀리 있는 모르는 세계였다. ‘모른다’는 이 우매한 무지는 천참산 성원사에서 주지스님과의 차담으로 들통 나고 말았다.
나는 짐짓 먼 산만 바라보았다. 성원사 지붕위로 파랗게 걸려 있는 초가을 달이 금방이라도 지붕을 밟고 내려 올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초의선사를 떠올렸고 다도에 걸 맞는 찻잎의 본적지를 생각했다. 가장 여리고 숫된 연초록의 찻잎은 대지 위로 생명을 피워 올리고 그 생명의 기운은 어느 마음착한 사람들의 심장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초의선사의 마음을 이해할지 모른다고 혼자 들떠 있었는데 스님은 묵묵히 차만 드시고 있었다. ‘도’를 아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 저렇게 무심한 것일까. 단순함으로 치달리는 무심은 다 저렇게 순연하고 또 순연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성원사 스님의 무심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연신 차만 마셔댔다.
절 밖은 어둠으로 사위어 가고 있었다. 천참산의 풍경은 시간과 공간을 절 밖으로 몰아내고 참된 자연의 서정을 절 안으로 불러들이며 화엄을 이루고 있었는데 나는 문밖을 나와 빈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을 바라보며 마음속을 들락거렸던 몽매한 무지를 반성했다. 저 달에게선 아직도 따뜻한 햇볕 냄새가 났다. 따뜻함은 현현하게 빛나고 나의 무지에 묶여 있는 서늘한 이성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스님은 여전히 차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혼자 마음속의 잡초들을 뽑아내느라 끙끙거렸다. 나는 언제쯤이나 저렇게 고요하고 무심하게 차를 마실 수 있을까. 바람과 비와 햇살과 땅의 기운으로 자라난 찻잎의 부드러운 고백을 맨몸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나는 괜히 대웅전 부처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침내 가을이 내게 오듯 나는 가을을 따라 강원도 길을 달려다. 원주를 지나자 순박한 시골총각 같은 신림이 나왔다. 예부터 신림은 오지 중의 오지였을 것이다. 산은 높고 물은 깊으며 길은 험하고 사람들은 착하고 착해 부처 아닌 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신림의 절에 가고 싶었다. 나의 착한 내비게이션에게 길을 물어 찾아갔다. 꼬불꼬불한 길들이 길손에게 다정한 손짓을 했다. 신림에서 한참을 들어가자 용암리가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 햇볕아래 알알이 박힌 열매들을 거두고 있었다. 일없는 강아지는 순한 얼굴로 꼬리만 힘차게 흔들어대고 가을바람은 천둥벌거숭이처럼 이리저리로 몰려다녔다. 그 길 끝에 천참산이 나직이 앉아 있었다. 치악산 남쪽 자락 끝에 있는 천참산의 이름은 낯설고 생경했지만 천참산의 따뜻한 가슴에 오롯이 들어앉은 성원사에 다다르자 나는 강원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강원도에 와서 자연이 되었고 성원사는 그 곳에서 부처가 되어 있었는데 무량 내리는 저녁햇살 아래 대웅전 부처님은 말없이 미소를 짓고 계셨다.
삼배를 마치고 나오는 내게 스님은 차를 권했다. 나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성원사의 시간 속을 유영하는 동안 헤르만헤세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헤세가 사랑한 싯다르타는 내게 부처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데 나는 가 닿을 수 없는 저편의 문을 열며 그에게로 가는 길을 물었다. 인간 싯다르타와 깨달은 부처 사이로 스님의 무심함이 길을 놓고 나는 그 길을 조심스럽게 건너며 고즈넉 속으로 들어갔다. 무심의 시간은 속절없이 깊어가고 스님의 말씀은 잔잔한 물결처럼 내게로 스며들고 있었다.
차담이 끝나고 다시 길을 나서는 내게 스님은 저녁공양을 권해 주셨고 나는 염치없이 상원사의 청정한 저녁을 공양했다. 가을은 아낌없이 내게로 와서 속절없이 천참산으로 물들어 가고 나는 이처럼 아름답고 고즈넉한 상원사에서 가을의 한때를 즐거이 기뻐하며 저편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