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문경새재 골짜기에 부는 바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이 온몸에 퍼져 나간다.
문경새재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항상 선두를 놓치지 않는 그런 길이다. 오늘은 그중 1코스 약 10km 길을 걷기로 한다.
들머리인 괴산 연풍면 고사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제 3관문까지는 나지막한 경사길로 오른 후 3관문부터는 내리막길로 2관문, 1관문을 거쳐 날머리인 옛길 박물관까지 가게 된다.
옛날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 죽령(竹嶺), 추풍령(秋風嶺), 문경새재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죽령이라는 이름에서는 ‘죽죽 미끌어진다'고 해서, 추풍령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이 길들을 피했다. 그런데 문경(聞慶)은 '들을 문(聞)’ ‘경사 경(慶)’으로 ‘좋은 소식을 듣는다’며 유난히 이 길을 택하여 상경했다고 한다. 호남의 유생들까지도 일부러 이 길로 상경했다고 하니 당시 문경새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던 것이다.
과거시험 보러 가는 길이라 그런지 3관문인 조령관 근처에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과거 보러 가는 선비상이 서 있고, 군데군데 옛길에는 금의환향길, 장원급제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조령관을 지나면 내리막인 신작로 같은 대로가 나온다. 과감하게 대로를 버리고 옛길로 들어서면 강하게 내려 쬐는 봄볕이 숲속 나뭇가지에 자잘하게 흩어져 내려 숲속의 모든 생명체를 따스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숲속의 모든 질서는 빛에 의해 조절된다.
빛은 자연이 내리는 최고의 축복이다.
1관문까지는 계속해서 평지가 이어진다. 사방으로 길이 넓다 보니 시야도 좋다. 가까이로는 아름드리나무들과 계곡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저 멀리 백두대간 조령산 자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왼쪽으로는 문경새재의 주산 주흘산이 당당히 버티고 서있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정치도 기대 이하이다 보니 서민들이 기댈 언덕이 사라져 세상살이가 팍팍하기 그지없다.
오늘 문경새재길을 걸으면서 부디 장원급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민들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게 만드는 반가운 소식(聞慶)들이 우리 사회에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