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월악산 덕주사




월악산 덕주사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위로 조금 걸어가면 헌법재판소 못미처에 아름다운가게가 있다. 재동을 지나 북촌한옥마을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나는 방앗간을 기웃거리는 참새처럼 아름다운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서 작은 것 하나라도 사곤 했다. 나눔이라거나 소통이라거나 하는 상투적인 구호에 혹해서가 아니다. 그냥 거기 있기 때문이었다. 내 발자국이 닿는 곳에 아름다운가게가 있어서 마음이 거기로 향했을 뿐이다. 작고 소소한 것들을 나눔 하는 알뜰시장이거나 혹은 벼룩시장 같은 즐거움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가게에서 경영하는 공정무역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착한경제를 실천하는 경제활동인 셈이다. 공정무역을 통해 히말라야에서 커피생산을 돕고 그 커피를 공정하게 들여오면 소비자는 공정한 값을 지불하고 구매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커피맛이 몹시도 궁금하여 두 봉지를 사서 한동안 마셨다. 마치 히말라야의 바람을 마시는 것처럼 허기진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히말라야의 바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커피가 생각났다. 히말라야 어느 깊은 오지에서 햇살과 바람과 비와 순박한 농부의 노동이 길러낸 커피를 마시며 가난하지 않은 내 삶을 감사했다. 때론 욕망하는 것들이 멈추지 않아서 고통스러울 때에도 한없이 너그러운 순례자의 기침소리 같은 히말라야 커피를 마시며 나는 내 욕망이 고결해지기를 욕망했는지 모른다. 오늘 문득 고결해지고 싶은 욕망 하나를 품고 나는 냉장고 속에 방치되어 있던 히말라야 커피를 내려서 한 잔 마셨다. 나는 착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데 착한경제의 아름다운커피를 마시며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지구 어딘가에 있는 그들의 노동을 기꺼이 소비했다. 지성을 욕망하는 고독한 인텔리겐치아의 낡은 가방 속 책처럼 나는 그들의 히말라야를 욕망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가 손아귀를 빠져 나가는 바람 같은 관념이 허망한 날 나는 안국동의 아름다운가게를 가는 대신 월악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순전히 그냥이다. 히말라야 커피는 떨어졌고 나는 그냥 월악산이 생각났다.

 


 

호수는 관능적이었다. 은결 짓는 물결을 따라 관능적으로 빛나는 호수가를 천천히 달렸다. 겨울햇살 때문이다. 아니다. 그의 눈빛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호수처럼 은결 짓고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제천 청풍호수에서 그의 눈빛은 운수납자처럼 영원에 가까이 가 있었고 나의 영혼은 여전히 통속적이었다. 월악산으로 가는 길은 청풍호수에서 물결처럼 겹겹이 흩어져 친절하지 않았다. 돌고 또 돌아도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월악산은 제천에서 홀로 고독히 앉아 있었고 제천은 청풍호수만을 편애하여 월악산을 저 깊은 오지 속으로 밀어 넣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낙엽이 쓸려간 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려 마침내 월악산에 닿았다.

 

그렇다. 고요는 깡패다. 내 무지한 영혼을 두들겨 패는 깡패다. 월악산 덕주사에서 마주친 고요에게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월악산을 넘어온 찬바람이 덕주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나를 휘감고 돌아 현기증이 일었다. 달이 뜨면 그 달이 영봉에 걸린다는 월악산에서 덕주사는 고요하고 고요했다. 깡패 같은 고요에게 두들겨 맞을 때 어이없게도 히말라야 커피가 생각났다. 허기진 영혼을 따듯하게 감싸 주었던 커피향이 생각나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히말라야 커피와 월악산 덕주사의 고요는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닮아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기꺼이 사랑하고 말 것인데 그래서 월악산 덕주사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를 생각하면 월악산의 달이 떠오른다. 월악산 봉우리에 걸린 달은 덕주공주처럼 애잔히 덕주사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왕건에게 신라를 넘긴 아버지 경순왕을 원망하며 나라를 되찾고자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나고 덕주공주는 출가하여 월악산에 남아 일평생을 구도의 삶을 살았으니 삶은 덧없고 인생은 무상하지 않던가. 기울어 가는 신라를 두고 이 험한 산에서 스님이 된 덕주공주를 생각하다가 그만 날이 어둑해지고 말았다. 초겨울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오고 나는 길 잃은 나그네처럼 덕주사에서 헤매고 말았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거센 흐름에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더 뗏목이 소용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얼마 전부터 자꾸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숫타니파타의 시구가 입 밖을 뛰쳐나와 바람을 타고 달아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서울로 돌아가 아름다운가게에서 떨어진 히말라야 커피를 사고 싶었다. 아름다운 히말라야 커피향을 닮은 월악산 덕주사에서 이제 그만 가을을 놓아주고 상쾌하게 서울로 돌아가리라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5.27 09:34 수정 2019.05.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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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