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사히 살아서

임이로

며칠 전 코스미안상에 입상해 시상식에 다녀오던 저녁이었다. 배울 게 참 많은 자리였다. 모든 일정이 끝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들어선 광화문 광장엔,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차고 건조한 바람이 많이 불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늠름하게 한 손으론 상패를 들고 버릇처럼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해 가장 먼저 본 것은 ‘한국민 사망 원인통계표’였다. 통계에서는 올해 10대~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 했다. 그리고 여전히 OECD 자살률 1위라는 뉴스도 확인했다. 갑자기 아득해진 기분에 높은 건물들 사이, 공기 안 좋은 서울 하늘을 올려다봤다. 미미하게 빛나는 별 하나.

 

요새 내 또래들이 하늘에 별이 되는 일이 그렇게 많다. 근데 많아도 너무 많다. 별도 별인데 살아생전, 찬란하게 빛나보기도 전에 사그라지는 생명의 불씨

가 정말로,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기분이 언짢아 그제야 이어폰을 빼고 주변을 둘러봤다. 광장 한쪽은 특정 유명인을 폄훼하며 혐오하는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컸고, 한쪽에는 ‘청년에게 우리가 이만큼 제공한다.’라며 생색내는 광고 네온사인이 별 흉내를 내며 번쩍였다. 그리고 내 손엔 통계표와 자살률 뉴스가 쥐여있다. 

 

참으로 비정한 사회다. 괜히 내가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은 것 같았다. 세상은 점점 더 불지옥이 되어가는데 나는 또 살아남았다. 나는 생존자다. 무엇이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걸까. 어떻게 살 것인가.

 

시상식은 내게 과분하게 따듯한 자리였다. 그래서 마치 아기공룡 둘리가 된 것처럼, 요람을 타고 잠시 딴 세상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배부른 감상에 빠져있다 찬 바람이 부는 광장에 나앉아 자살률과 사망원인 지표를 보고 나니, 문득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튀어나온 실없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 복지제도’를 상징하는 영국 경제학자의 유명한 말이지만, 당장 내게는 조롱하는 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태어난 자리와 죽어 눕는 자리가 같아야 한다는 말인가? 또는 내게 영원히 누워만 있으란 말인가? 

 

그래. 이 말처럼 요즘 청년들의 세태를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팔자 고칠 꿈도 못 꿀, 천편일률적 사회! 내가 자취방을 나서는 길엔 공동주택과 편의점 뒤 주차장, 카페테라스 그리고 경찰서 뒷마당이 한데 모여있다. 경찰서 뒷마당을 제외하고는 하나 같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자기 사유지에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삐뚤빼뚤 적은 팻말이 세워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여 사는데, 이들 모두 그 팻말을 보고는 담배를 태우러 나와 헤매다 경찰서 뒷마당에 꽁초를 투척하는 일이 다반사다.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파렴치하다고 욕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거리에 ‘같이 사용할’ 쓰레기통이 없으니 만만한 경찰서 뒷마당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거 아니겠는가. 담배라는 걸 떠나 생각해보자. 나와 같은 평범한 청년들이 소유할 턱 없는 주택, 가게, 주차장에는 팻말 하나 세워놓으면 그만이지만 어쩐지 한숨 돌릴 공간조차 어디에도 허락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그 박탈감. 난 이런 데서 ‘공공영역과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생각해본다.

 

자동차 클렉슨을 온몸으로 받아 가며 교통 차로를 달리는 배달 라이더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배달 시간은 돈이다. 빠른 배달은 소비자 만족에 직결되어 플랫폼 서비스에 자신의 평가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배달문화가 극치를 달리는 요즘, 배달 음식을 그만 시킬 게 아니라면 마구잡이로 차선을 끼어드는 라이더들을 힐난하고 적대할 게 아니라, 라이더 오토바이 전용 차로를 따로 구분해 사용하는, 즉 교통차로를 ‘같이 사용할’ 공공 행정적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배달 라이더들은 사고가 나면 사망률이 자동차보다 2.7배 높다. 안타깝게도 이런 위험한 현장에 내몰린 이들 대부분도 자동차를 살 여유가 없는 청년들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층 이동은 꿈도 못 꿀 정도로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청년 실업이 사상 최고치인 요즘, 연령대별 ‘경제고통지수’도 2022년 상반기 기준 청년이 25.1로 가장 높다. 사람들은 여전히 ‘일 안 하고 노는 사람’을 욕하고 경시하기 바쁘다. 그 결과, 무한 경쟁 사회에서 승자가 되어 독식하면 다행이지만 한때 누구나 하는 실패와 실수, 또는 타고난 요람 때문에 한순간에 ‘인생 패배자’로서 사회 바깥으로 내몰려야 하는 청년들은 주어진 수명보다 빠르게 자기 무덤을 찾아가는 수가 많아지고 있다.

 

나는 되묻고 싶다. 이 경직된 사회를 모두 우리가 만든 거냐고. 아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내게 찾아온 이 사망원인 지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우리를 아프도록 방치한 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목숨값으로 전하는 간절한 SOS 구호로 들렸다. 누구도 경쟁에서 패배한 자신을 품어줄 리 없다는 체념과 이 비정한 사회에 대한 불신이 우리를 죽음으로, 그렇게 무덤으로 내모는 것이다. 별처럼 빛나보지 못한 채, 꽃처럼 피워보지 못한 채 말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경제적 효용과 부가가치에 대한 통계를 내는 것처럼, 청년들이 사회를 불신하는 데서 야기되는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도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은 자신의 무능력과 패배요인에 자책할 시간에 공공영역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내 땅에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시오.’와 같은 발상이 아니라, ‘담배꽁초를 같이 버리고 수거할 공공 수단‘에 대한 고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마냥 누워만 있을 게 아니라 직접 뛰쳐나와 행여나 패자가 된 후에도 다시 재기할 공공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에 대해 직접 요구하고 해결해야 할 시기에 이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업률과 자살률이 고공행진 하는 요즘, 무기력한 그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러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사히 살아서 만나자 친구들아!

 

 

[임이로]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칼럼니스트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3.11.10 08:57 수정 2023.11.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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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