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삶은 공평하다 Life is Fair

이태상

흔히 삶은 불공평하다(Life is unfair)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어로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준화한다.(Death levels all men.)’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선 금수저니 은수저니 동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론이 있다지만 우리 좀 살펴보자.
 
사람이 쓴맛을 본 연후에라야 단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듯이 수고 없이 주어진 건 제대로 누릴 수 없지 않던가. 우리 모두 빈손으로 왔으니 뭘 얻고 갖게 되든 다 남는 장사하다가 다 놓고 떠나게 되지 않던가. 여름 휴가철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모래성 쌓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듯 말이어라.
 
어디 그뿐이던가. 세상 사는 이치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언제나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 숨을 내쉬어야 들이쉬게 되고, 배설을 해야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으며,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한 예로 사람들의 선호대상인 건강하고 잘생긴 미남미녀의 잣대를 살펴보자. 몸은 건강해도 마음이 불구이거나 외모는 아름다워도 심보가 고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의 1831년 출간된 장편소설 ‘파리의 노틀담(Notre-Dame de Paris, 영어명은 The Hunchback of Notre-Dame)’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1939년 처음으로 아일랜드계 미국 여배우 모린 오하라(Maureen O’Hara(1920- 2015)와 영국 남배우 찰스 로튼(Charles Laughton 1899-1962)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가 1956년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Gina Lollobrigida 1927-2023)와 멕시코계 미국 남배우 앤소니 퀸(Anthony Quinn 1915-2001) 주연으로 다시 만들어진 영화에선 앤소니 퀸이 맡은 ‘콰지모도’ 역은 겉이 추해도 속이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픽션에선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도 그런 예를 하나 들어보리라.
 
26살의 리지 벨리스케스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자로 불렸다. 키 157센티미터, 몸무게 26kg에다 지방이 별로 없어 뼈만 앙상한 데다 한쪽 눈까지 멀었고, 조로증과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거미손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2015년 10월 28일 미 의회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연방 차원의 학교 왕따 방지법 입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녀의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로 자라다 유치원에 간 첫날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고, 17세 되던 해 유튜브에 뜬 자신의 영상을 보고 ‘괴물이다’, ‘불에 타 죽어버리라’는 등의 악성 댓글을 대하며 많이 괴로웠지만 극복했다.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용감한 사람’이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9개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라 보르도 감독은 “리지의 이야기는 독특하다”며 “괴롭힘을 당하는 감정, 다른 사람의 비열한 행위의 희생자가 되는 감정은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2월 공개됐던 그녀의 ‘기술, 오락, 구상 회의(TED Talk-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연설은 큰 화제를 모으며 아름다움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 자신과 다르다고, 상품화된 마네킹 같지 않다고, 남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야말로 눈뜬장님들이 아니랴. 아니, 그보다도 자신의 추하고 못난 모습을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쳐 보는 것이리라. 얘부터 겉이 화려하면 속이 빈약하다고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 하지 않나.

약방의 감초 같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리라.
 
내가 젊었을 때 바람둥이 친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친구야말로 일찌감치 도통한 입신지경에 도달하지 않았었나 싶다. 이 친구는 얼굴이 못생겼거나 몸맵시가 없어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들만 상대하는 것이었다. 이 친구 말로는 못생긴 여자일수록 속궁합은 훨씬 더 좋더란다.
 
어쩜 그래서 자고로 미인은 흔히 불행하거나 병약하여 요절하는 일이 많다고 미인박명이라 하고, 재인부덕(才人不德)하다고 하는 것이리라. 재주고 재산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You get what you pay for라 한다. 남 보기에 좋다고 또는 나쁘다고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삶은 공평(公平)한 것임이 틀림없어라.
 
슬픔을 동반한 우울한 정조(情調)나 의학적으로 우울증(憂鬱症)을 가리키는 멜랑콜리(melancholy)는 그리스어 ‘melancholia’에서 유래한 말로 검은색을 뜻하는 멜란(melan)과 담즙(膽汁)을 의미하는 콜레(chole)의 합성어인데 마치 달무리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고대 그리스에선 인간의 체액(體液)을 네 가지로 분류해 그중 한 가지인 흑답즙(黑潭汁)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는 탄식한다.
 
‘멜랑콜리송(頌)’
 
“불현듯 하늘에서 눈물 흘리는 구름처럼
발작같이 멜랑콜리 증상이 일어나면
아름다움으로 머물지만 사라지는 아름다움일 뿐”
 
‘Ode on Melancholy’
 
“But when the melancholy fit shall fall
Sudden from heaven like a weeping cloud
She dwells with Beauty – Beauty that must die”
 
영어로 ‘depression’이라는 병적으로 의기소침한 우울증과는 달리 멜랑콜리라 할 때는 어떤 낙담스러운 현실과는 상관없이 삶의 실존적 애잔한 슬픔이 애절할 뿐이다. 그 덧없음이 입김 어린 안개 같고 달빛처럼 몽환적이다.
 
“성(性)노동은 단지 일이다. 나한테는 정직한 일이었다. 난 젊었을 때 성노동자였다. 힘든 일이었지만 보수가 좋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Sex work is simply work. For me it was honest work. I was a sex worker when I was young. It was hard but well paid. There’s no shame in it.”
 
이렇게 몇 년 전 한국계 미국 코미디언 마가렛 조(Margaret Cho, 1968 - )가 인터넷에서 밝히자 많은 논란을 빚었지만, 수많은 전-현직 성노동자들의 성원이 있었다.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항상 남녀의 인연을 잠시나마 맺어 준다는 월하(月下) 노인이 지닌 주머니의 붉은 끈 월로승(月老繩)에 묶인 달 속의 궁전 월궁(月宮)이 있어오지 않았나.
 
요즘 영어로는 바이폴라(bipolar)라는 정신의 억울과 조양(躁揚) 상태가 번갈아 또는 한쪽만이 나타나는 정신병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영어로 실성한 사람을 ‘달빛을 쏘였다’고 ‘moonstruck’이라 하는데, 특히 사랑에 빠져 약간 미쳤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뿐더러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정기적으로 며칠 계속하여 출혈하는 현상 ‘멘스’를 우리말로 월경(月經)이니 월사(月事)라 하고, 바다의 조수(潮水)와 한가지로 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불교에서는 열둘의 대서원을 발하여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을 준다는 약사여래의 오른쪽에 모시는 ‘일광보살’과 함께 상수에 있는 보살을 ‘월광보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절세의 미인을 가리키는 말로 월궁(月宮)에 산다는 선녀를 ‘월궁항아(月宮姮娥)’라 한다.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화가로서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린 호(號)가 혜원(蕙園)인 신윤복(申潤福 1758-1814)의 은밀한 남녀의 만남을 그린 작품 ‘달빛 연인’(제작연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서 여인은 한결 다소곳한 모습이다. 한밤중의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 밀회를 나누는 표정이 생생하다. 한쪽 손으로 장옷을 여미고 있지만 여인은 남정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푸른 옥색 치마는 허리춤에서 질끈 동여매고 치마 아래로 역시 백설같이 눈부신 속곳 가래가 달빛에 비친다.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장옷을 잡은 여인의 저고리 붉은 소매 깃은 사내의 심상치 않은 시선을 이끌고 있다. 이와 같이 혜원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속곳을 드러내고 있는 ‘끼’ 있는 여인네들로 표현되지만, ‘미인도’는 당대의 젊은 여인의 자태가 가장 아름다운 여성미로 완벽하게 표현되어 압권을 이루는 작품이란다.
 
초승달 같이 가는 실눈썹과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의 뽀얀 가리마, 윤기가 흐르는 크고 탐스러운 칠흑의 트레머리로 한껏 멋을 부렸다. 미소를 머금은 여인의 얼굴에선 아직도 앳된 모습이 역력하지만 풍성한 치마 아래로 살짝 내비친 속곳 가래와 흰 버선에서 단정한 여인의 색정이 느껴진다.
 
아, 달빛이 없다면 햇빛이 무슨 소용이랴!
 
된장녀나 김치녀를 들먹이는 여성 혐오가 최근에 와서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데, 이를 “한국의 저출산, 저성장에 대한 해법은 여성의 지위향상”이라고 스웨덴의 카로린스카 대학(Karolinska Institute) 인구문제 석학 한스 로슬링 (Hans Rosling1948-2017) 교수도 지적했다지만, 어서 한국에서도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져야 하리라.

마찬가지로 청년 실업자 문제에 있어서도 그 해법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임시직의 구분 이 없어지는 추세에 적응해가는 것이리라.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기그 경제(gig economy)’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기그(gig)’란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 즉석에서 수시로 임시 연주자를 구해 공연하게 된 데서 생긴 단어이다. ‘파트타임(part-time)’, ‘프리랜서(freelancer)’, ‘온 디맨드(on demand)’, ‘우버(uber)’ 등과 같은 임시 고용 방식을 말한다.
 
소위 하드웨어(hardware)로 일컫는 일자리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 드론과 3D 프린터 등 기계로 대체되어가는 마당에 고등 교육조차도 더 이상 평생직장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표준형 인력을 양성하는 대신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워 각 분야에서 필요한 소프트웨어(software)를 제공하도록 해야 하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는 각자의 재능과 자질을 살려 어떤 조직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사회에 공헌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되리라.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날품팔이 예술인, 과학자, 작가, 철인이 되어 봉이 김선달이나 방랑 김삿갓처럼 또는 황진이 같이 살아보리라.
 
김억(金億), 호는 안서(岸曙)로 호를 따라 김안서(1896-?) 작사, 김성태(金聖泰1910-2012) 작곡으로 ‘꿈’이라는 제목으로 가곡으로도 만들어진 황진이(黃眞伊 1506-?)의 시조 ‘상사몽(相思夢)’을 우리 한 번 같이 읊어보리라.
 
“상사상견지빙몽(相思相見只憑夢)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농방환시환방농(儂訪環時歡訪儂)
내가 임 찾아 떠났을 때 임은 나를 찾아왔네.
 
원사요요타야몽(願使遙遙他夜夢)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일시동작로중봉(一時同作路中逢)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애초에 짜놓은 각본 드라마. 그 안에서의 난 그저 들러리일 뿐. 근데 누가 날 주인공으로 바꿔놨어? 바로 나였어.”
 
얼마 전 케이블 채널 Mnet이 방영하는 여자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2’에 출연하는 피애스타라는 걸그룹 멤버 예지가 탈락의 위기에 놓인 순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우승 후보로 올라 무대에서 제작진을 향해 외친 말이었다.
 
예지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울림이 큰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른 환경과 조건에 태어나 다른 현실을 살아가지만, 남이 조종하고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사느냐 아니면 제가 꿈꾸고 희망하는 대로 자신의 독창적인 삶과 운명을 개척하느냐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이며 선택사항이 아닌가.
 
똑같은 음식 재료를 갖고도 각자가 전혀 다른 요리를 할 수 있듯이, 똑같은 백지 종이에다 똑같은 크레용과 색색이 물감으로 각자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똑같은 자연과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전혀 다른 풍경 산수화와 인물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던가. 똑같은 길을 간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보고 듣는 느낌과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각자는 각자 대로 자신의 인생드라마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내키지 않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내키지 않는 직업을 갖고,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할 수 있으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의 능률도 날 뿐만 아니라 우선 즐거워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가. 따라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콩이면 콩 노릇 해야지 팥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원초적인 예로 태교(胎敎)를 생각해보자. 엄마의 만족이 태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 않는가. 태어난 이후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자는 자신만의 태교를 성명철학으로 이어가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 나가야 하리라.
 
사랑스러운 아역스타 김윤정(16)이 훌쩍 자라 2015년 개봉한 영화 ‘비밀’의 주역을 맡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데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차근차근, 제 나이 때 할 수 있는 역할,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또 많이 할수록 배운다고 생각하고 처음 해 온대로 잘 유지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억지로 나를 바꿔놓으려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20살이 되면 또 그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아, 이것이 우리 각자가 다 자기 삶의 주역으로 사는 ‘비밀’의 열쇠가 아니랴!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각자는 각자 대로 자신의 삶을 살 때 무질서한 카오스가 아닌 조화롭고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모두 하나같이 날이면 날마다 아무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복면가왕’으로 새 역사를 쓰는 것이리라. 얼마 전 MBC ‘일밤-복면가왕’의 13, 14, 15, 16대에서 4연속으로 등극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 같이 말이다.
 
매회 독보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갓스모스’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다는 ‘코스모스’처럼 우리 모두 각자가 다 온 우주 코스모스의 화신(化身)임을 깨달아야 할 일이어라.
 
자, 이제 우리 어떻게 컨택트(Contact)와 언택트(Untact)의 조합(組合/調合)을 이룰 수 있는지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Rumi 1207-1278)가 남긴 말 한두 마디 음미해보리라.
 
“이별이란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법. 가슴과 혼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겐 없기 때문이지. Goodbyes are only for those who love with their eyes. Because for those who love with heart and soul there is no such thing as separation.”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숨 쉬라. Wherever you are, and whatever you do, be in love.”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3.11.18 09:27 수정 2023.11.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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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