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칼럼] 안개에 대한 기억

허석

멀리서 본 안개는 아름답다.

허공에 또 하나의 허공이 부유한다. 무명 치마폭처럼 대지를 감싸 안고 꿈속의 꿈을 꾸는 듯 너울너울 춤춘다. 어쩌면, 하얀 드레스의 여인이 무도회에서 벌이는 한바탕 관능적인 유혹일지도 모른다. 오묘하고 몽환적인 스푸마토 기법의 그림 한 폭이다.

 

묵음 처리된 풍경처럼 아무 소리가 없다. 형태도 무게도 없는 공허의 빛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시공간에 대한 의미심장한 은유일까. 맑고 고아한 영혼들이 존재하는 천계의 모습이 저러할까. 숨겨진 비밀정원을 엿보듯 의아하고 의뭉스러운 물음표가 일어선다.

 

구별과 차별이 없다. 높고 낮은 것, 잘나고 못난 것도 아랑곳없이 품 안에 모든 것을 수용한다. 햇빛과 그늘의 경계도 없고, 있고 없음의 존재도 없다.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쫓기는 자도 이곳에서는 잠시 가쁜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원근도 없는, 정답 없는 삶의 길이 이곳인지도 모른다. 하심인 듯 방하인 듯 내 안의 망집과 악착들을 내려놓고 떠나는 허허로운 나그네의 뒷모습 같다. 어디서 생겨나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길 없다. 용오름 하듯 안개가 걷히고 나면 지나온 발자국이 길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을 뿐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출근길이다. 지하 차고를 나오자 자욱한 안개가 앞을 가로막는다. 가시거리가 없어 황망함과 당혹감이 교차한다. 세포 분열하듯 꾸역꾸역 몰려오는 잿빛 안개가 금방이라도 천 길 낭떠러지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다. 비상 점멸등과 전조등을 켜고 바짝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나선다. 어디에 장애물이 있을지, 혹시나 다른 차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눈뜬장님이 따로 없다. 일상에 익숙했던 거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장소가 되어버렸다. 눈을 감고서는 발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것처럼 안개는 평소 습관적인 모든 기능과 행위를 일순간에 무력화시켜버리고 말았다. 나침반이나 지도도 무용지물이다. 방향을 알아도 길이 없고, 빛은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길 잃은 자에게는 한낮도 어둠이다.

 

보이지 않는 장막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이다. 눈앞의 낯익은 풍경과 소리가 사라져 버린 그곳은 암전과 침묵만이 지배하고 있다. 남들은 제자리를 찾아 제 길로 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서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소외감이고 고립감이다. 

 

그것은 안개였다.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을 때였다. 그때는 이미 장년의 나이였다. 젊은 패기도 아니면서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 새롭게 정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민을 미리 준비하지도 못했지만, 외국 생활은 여행할 때의 느낌과 실제 주소지를 정하고 살아가는 것과는 판이하였다. 

 

다급한 것은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해바라기할 빛도, 딛고 설 땅도 없었다. 한 개의 콩 줄기에 묶인 깍지 콩 같은 식구들을 바라보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들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노동자의 일 뿐이었다. 돈도, 인맥도, 사회적 기반도 없는 곳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렇다고 새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새우잠 자는 식구들 몰래 꼭두새벽에 일어나 마른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서면 세상은 온통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몸이 힘들고 고달픈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동토의 순록도, 사막의 낙타도 자기 길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자신을 슬프게 만들었다.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이 고개 너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안개 낀 날 징검다리 건너듯 불확실한 삶의 행보가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 지금 이 순간의 막막함에서 무언가 탈출구가 목말랐던 시간이었다. 

 

안개는 언젠가 걷히게 마련이다.

어느 날부터였다. 깜깜한 어둠도 시간이 지나면 암순응되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개도 막상 발을 들여놓으면 나름대로 적응하는 방법은 있었다. 주어진 자기 길에 순순히 응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 재주나 요행을 바라기보다 맨바닥처럼 완강한 현실마저 감사하며 견뎌내는 것, 인생을 잘 살아가는 욕심보다 잘 살아내겠다는 고래 심줄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돈짝만 하던 하늘이 점점 넓어지고 파란 속살을 보이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사라져 허방으로 빠질 것만 같던 발은 어딘가를 힘차게 딛고 서 있었다. 어느 정도 이민 생활의 경험과 내력이 쌓이고 가야 할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쯤은 어느새 안개가 걷혀 있었다. 삶은 여과지와 같아서 그곳을 통과하고 나면 어떤 고통과 시련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었다. 

 

살아보지 않은 생(生)을 산다는 것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불투명한 일이었다. 더듬어도 보이지 않는 삶은 상형문자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문제가 분명했다. 하지만 정말 슬픈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을 잃고 포기하는 것이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알고 보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안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의심과 불안의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안개는 ‘일시 멈춤’이 아니었을까. 당연하다고 여기며 습관처럼 살고 있는 일상생활을 잠시 흩뜨려놓고 잘살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평소 소홀했던 일상의 감사함과 고마움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찬란했던 과거도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때로는 잊거나 지워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여유 같은 것도 그때 배웠다. 하루하루 작은 드라마 같은 삶 속에서 그 아픔과 슬픔마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중한 의미였음을 그 시간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안개를 자주 만난다. 당황하거나 두려워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안개는 곧 걷힐 것이고 삶이라는 수레바퀴는 묵묵히 굴러갈 것임을 알기에, 이제는 그 고통과 절망에 아프거나 흔들리지 않을 뿐이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3.11.21 09:51 수정 2023.11.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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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