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이맘때면 문중 시제를 지내는 가문이 제법 있다. 그중의 하나인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시제를 르포로 취재했다. 시제는 11월 1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마전리에 있는 구양재(龜陽齋)에서 전주이씨 덕천군파 춘발공종중(종회장 이용진) 종원들 약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마전리는 전주이씨 덕천군파의 집성촌으로 예로부터 인심이 좋고 산천 경계가 빼어난 곳이다. 약 350년 전부터 선비들이 조상을 모시며 주경야독하던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마전리 인근의 진동면 인곡리와 오산리, 거제 가조도, 통영 한산도 등지에도 덕천군파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들도 시제 때면 마전리에 있는 재실인 구양재에 모인다.
이날 시제를 지내고 나서 구양재의 중건 내력과 재실 기둥에 붙인 글인 주련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 주목받았다.
龜陽齋(구양재)
南國雲林何處好 남국운림하처호
龜山盤屋可耘耕 구산반옥가운경
靈明之世甘肥隱 영명지세감비은
敎子課孫詠泰平 교자과손영태평
남쪽 나라에 선비들 있으니 어느 곳이든 좋지 않으리
구산에 반반한 집 지어 김매고 농사지을 수 있네
신령스럽고 밝은 세상에 풍요가 숨어 있고
가르치고 배운 자손들 태평성대를 노래하도다
[주석]
1) 구양재(龜陽齋):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마전리에 있는 전주 이씨 덕천군파 재실이다. '구산면의 양지에 있는 재실'이란 뜻으로, 후손들이 양지처럼 밝고 따뜻한 마음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집이다.
2) 운림(雲林) : 시골에 은둔하여 사는 선비들
3) 구산(龜山) : 옛 구산현은 칠원현의 속현이었다. 현재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을 말한다.
4) 반옥(盤屋) : 반석 위에 지은 집, 즉 구양재 재실이다.
5) 운경(耘耕) : 김매고 농사짓는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자손을 가르치는 자식농사로 봐야 한다.
6) 감비(甘肥) : 직역하면 '맛있는 음식'이나, 여기서는 풍요로움으로 해석하였다.
7) 교자과손(敎子課孫) : 가르치고 배운 자손들
구양재의 현판과 주련(柱聯)은 덕천군 20대손 이봉수 씨가 한글로 번역했다. 주련은 칠언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기승전결과 운이 들어간 수준 높은 한시로 평가된다.
구양재는 6·25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덕천군 17대손 해산(海山) 이은춘(李銀春) 공이 전후에 중건하였다. 당시 종친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재실을 중건했다. 중건 당시 큰 돈을 댄 사람은 진동면 인곡리(속칭 드무실)에 살면서 진동면 다구리 죽도(대섬)에서 멸치 어장막을 하던 덕천군 19대손 이용호(李鎔浩) 공이다. 구양재 경내에는 두 사람의 송덕비가 있다.
구양재의 현판, 주련, 상량문, 기문 등은 해산 이은춘 선생이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1964년에 작고한 해산 선생은 <해산우고 海山愚稿>라는 유고집을 남겼으며, 증손 이봉수 씨가 국역하여 2011년에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시제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다. 경남 일대에는 마을마다 재실 하나쯤은 있다.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재실 문화가 아직도 면면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시제 철이 되면 경남 일대에는 주말에 교통이 혼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