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곽흥렬

유원지 둘레로 나 있는 오솔길 따라 산책을 즐기는 중이다. 서른 안팎쯤 되었을까,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오누이인 듯한 아이 둘, 이렇게 넷이서 광장 한 모퉁이를 차지한 채 배드민턴에 열중해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아침 운동을 나온 가족인 성싶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까르르 까르르 자지러지게 웃는다. 무척 행복에 겨워하는 표정들이다. 

 

아, 세상살이가 언제나 저 가족 같을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이 퍼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순간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행복’이라는 낱말을 호주머니 속에서 다시 꺼낸다. 행복, 그래 그게 어디 별다른 데 있는가. 우리들 소박한 일상의 삶 가운데서 행복이란 이름의 새싹은 모르게 자라고 있는 것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러한 우리의 바람과는 너무도 멀어 있는 것 같이만 여겨진다. 보고 듣고 느끼는 온갖 추잡스러운 일들로 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마음의 우울을 느끼곤 한다. 

 

요새 사람들은 너나없이 지극히 표피적이고 말초적인 것, 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려 드는 것 같다. 진득하거나 은근한 구석이라곤 눈 닦고 살펴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일회용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사랑조차도 온통 일회용투성이로 널려 있다. 쉽사리 만났다가 쉽사리 헤어지고 금세 활활 달아올랐다가 금세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양은솥 같은 사랑, 그 뒤에 남는 것은 허무의 껍데기뿐인 것을…….

 

잠깐 눈 돌릴 사이에 예서 불쑥 제서 불쑥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내미는 러브호텔이며,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불야성을 이루는 나이트클럽이니 회관이니 카바레니 하는 휘황찬란한 광란의 현장이 우리의 눈을 사정없이 빼앗아 놓는다. 불륜으로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그 요사스런 장삿집들이 나날이 번창해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충분한 방증이 아닌가. 로마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연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반반한 애인 하나 두고 있지 않으면 팔불출 취급을 받는다는 세상,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온갖 흉측스럽고 끔찍한 사건들 가운데 치정으로 얽히고설키지 아니한 것이 대관절 몇이나 될까. 

 

밤은 낮의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별천지다. 낮 동안엔 새색시같이 얌전한 세상이 밤만 되었다 하면 머리를 풀어 헤친 미치광이로 표변豹變한다. 낮과 밤이 흡사 옛 여인의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처럼이나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이즈음의 상황, 여기서 나는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본다. 

 

노래방의 도우미 생활을 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어엿한 가정을 가진 주부들이란 사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외간 남자들과 어울려 두 손 마주 잡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어디 손만 잡으면 그나마 참으로 다행이게. 가슴을 비비고 아랫도리를 맞부딪고, 그러다 뜻 맞으면 즉석에서 흥정이 이루어져 스스럼없이 다음 순서로 진행이 되어 간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말초적 감각을 즐기려는 인간들이나, 그걸 이용하여 손쉽게 돈을 벌려는 부류나 사람답지 못하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동물적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반윤리의 현장. 사람살이가 짐승들의 삶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말할 근거를 요새 세상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을 것만 같다. 한심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사람들은 마음의 안뜰은 가꾸려 하지 않고 어쨌든지 겉껍데기 치장에만 열을 올린다. 이것이 유독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언서판이라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살아난 것인가, 겉모습에 보다 높은 가치를 매기는 오늘의 세태가 물론 그 상당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리라.

 

이성이 말초적 감각의 떠세에 짓눌려 전혀 빛이 바래 버린 세상이다. 현대인들은 한 끼 식사며 하룻밤 잠자리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가진 것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책 한 권 사고, 음악회의 티켓을 끊고, 연극 공연의 관람권을 구입하는 데는 수전노처럼 인색하다. 정신문화 상실의 시대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자연 물질이 정신 위에 군림하는 삭막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래 가지고는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성이 감정 앞에 꼼짝 못 한 채 잔뜩 움츠려 있는 이즈음의 세태는, 다 내일의 건강한 삶은 생각지 아니하고 그저 오늘의 말초적인 쾌락만을 좇는 우리의 표피적인 삶에서 초래된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인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혼이 마치 무슨 기리고 두둔할 만한 도덕률이라도 되는 양 그럴싸하게 포장된 채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는 세상, 그로 인해 범죄의 씨앗은 이미 그 안에 잉태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 가정에서 문제아가 생겨난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부인하려 들지 못하리라.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삶의 바깥뜰이 너무 시끄러운 시대인 성싶다. 귀청을 뚫을 듯이 마구 고함을 지르며 떠들어 대기는 좋아하면서도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명상에 잠길 줄은 모른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의 천박한 동물적 속성은 아닐는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因果의 이법을 가슴 깊이 새기고서 모름지기 사람답게 살아갔으면 한다. 제정신을 잃은 광란의 삶은 이제부터라도 제발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할아비의 선업善業은 손자 삶의 거름이라고 했다. 우리가 끝끝내 오늘처럼 이렇게 말초적 쾌락만을 좇는 삶을 계속해 나간다면, 이건 결국 우리의 후손들에게 필연적으로 헤어날 수 없는 짐이 되어 두고두고 그들의 삶을 압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장래 언젠가는 받게 될 선악의 과보果報는 오로지 오늘 너와 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어떠한 삶이어야 할 것인가.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인 화급하고도 절실한 화두話頭이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3.12.04 10:44 수정 2023.12.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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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