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외딴섬이었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로 섬을 향해 끝없이 자맥질하는 포말은 무심한 파도 소리만 키우고 있었다. 정지된 시간처럼 풍경으로 남겨진 바닷가에 갈매기들은 콩깍지만 한 전마선 주위를 끼룩대며 맴돌았다. 여객선 뱃고동을 뒤로하고 육지로 출발하였더니 뒤꽁무니에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따라붙는다. 중간에 돌아가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시간이 넘는 바닷길을 선미파를 넘나들며 매달리듯 육지까지 뒤따라왔다. 갈매기의 눈빛이 허공처럼 텅 빈 동백꽃 같았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육지와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석양처럼 인생도 기우뚱, 내색도 없이 지나간다. 나이 들어 바라보는 황혼은 공허하고 처연한 일이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빗물 머금은 무채색 하늘, 늦은 밤 호젓한 달빛처럼 바라만 보아도 구석구석 어둠의 그림자를 품은 쓸쓸함이다. 엎어 놓은 밥공기가 무덤 같다던 시인의 말처럼 노후에 혼자만의 생활이 허허롭고 적막하기만 하다. 홀로 났다가 홀로 떠나는 것이 인간이지만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줌의 관심과 위로를 갈구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실망감이 크다. 살갑지도, 습습하지도 않은 자식들은 제때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 가청음역 밖의 메아리처럼 외로움의 긴 한숨 소리에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딱히 불효한다거나 속을 썩이는 일이 없는 데도 마음 둘 곳 없는 벌판처럼 허전한 심사의 나날이다. 아무래도 딸이 없는 자식 농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니, 분명 그 때문이라 단정한다. 아들들은 본래 어머니란 여자의 깊이와 속내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 집은 남자들밖에 없었다. 일밖에 모르는 남편과 장승처럼 무뚝뚝한 아들 네 명이 식구들 전부였다. 아들자식 귀한 집에서는 부러운 일이겠지만 정작 막내 하나만은 딸자식이기를 소원했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일가 구성의 끝을 맺었다. 처마 밑에 제비처럼 식구들 정겨운 소리는 남의 집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의 자식들은 그나마 귀여운 짓을 하느라 웃음거리를 주더니 커갈수록 점점 깡통 로봇처럼 뻣뻣하게만 변해갔다. 남자들만 사는 그 집은 낯선 문화와 언어의 행성에 온 이방인처럼 여자의 눈에는 갈수록 생경하기만 했다.
그녀는 늘 소외자였다. 무조건 강하고 직선적인 그들만의 문화는 애정에 목말라하는 여자의 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곳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재미도 없고, 유머도 없고, 낫낫한 감정표현도 없었다. 꽃이 피어도 향기를 모르고, 작은 손길 하나에도 감동이라는 신기한 묘약이 숨어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지붕 아래 몸은 함께 있어도 생각과 행동은 서로가 겉돌았다.
남자들끼리 의기투합한 자식들은 언제부턴가 그녀를 어머니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이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주제와 바탕이 엇갈리고 바라보는 사물이 달랐다. 그녀의 주장은 허공에 메아리가 되기에 십상이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 그녀의 언어는 추임새처럼 단절음의 감탄사로 매번 끝나고 말았다. 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투명 인간처럼 남자들의 귀와 입을 빌어 살 수밖에 없었다. 홀씨로 세상에 온 앉은뱅이 민들레처럼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고립과 소외감 같은 거였다.
살가운 모녀의 정이 그리웠다. 도란도란 수다도 떨고, 같이 드라마도 보며 울고 웃기도 하고, 은밀한 여자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일들을 상상하는 날이 많았다. 딸은 키우는 재미라고 하지 않던가. 머리채를 요리조리 땋아서 모양도 내어보고, 예쁜 옷을 입혀 눈요기도 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인형 놀이에 불과했다. 여자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남자들에게 그런 자세(仔細)한 감정을 기대하기란 한낱 꿈속의 꿈일 뿐이었다.
나이가 늙숙해질수록 가슴 한편의 공허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살아가는 날들이 곤비하여 가끔 실토정하고 싶어도 그 심중을 헤아려줄 상대가 없다. 자식들 사이를 비집고 덩굴손처럼 무엇인가 붙잡으려 하지만 허방다리를 짚듯 남는 것은 상실감뿐이다. 호강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프다거나 외롭다는 말 한마디에 물불 가릴 것 없이 뛰어와 주는, 남 앞에서는 호들갑일지라도 아무 곳에서나 무작정 내 편이 되어주는 그런 딸자식들의 모습을 보면 빚진 채무자처럼 주눅부터 들었다.
딸자식이 없는 대신 며느리들에게 내심 기대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모두가 들국화처럼 청순해서 남자들만의 건조한 집안에 갓 쪄낸 옥수수같이 정겹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바라보는 꽃들이지 내 손에 물들이는 봉숭아나 내 마음 위해주는 뒤란의 분꽃은 아니었다. 차라리 모정을 에워싸고 모질게 달라붙는 잡초가 더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딸 같은 며느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남들 앞에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었다. 체면과 도리가 따르는 관계는 세상에 어떤 일도 흉이 될 수 없는, 아무리 못난 짓도 잘못이 될 수 없는 피붙이 같은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사는데 정신이 팔려 젊을 때는 마음 한구석에 미련으로 남겨두었지만, 노구의 몸이 되고 보니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그나마 의지하고 타시락거리며 살던 남편마저 떠난 뒤로는 낮달 걸린 거푸집에 홀로 우두커니 지내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날이 그날이고 그 일이 그 일이며, 멀리서 자식들 소식을 기다리다 텅 빈 가슴에는 매일 서늘한 바람이 분다. 허우룩한 마음에 할미꽃처럼 고개 숙인 하루는 그리움에 젖은 노을빛으로 마감하고 만다. 이제 딸자식에 대해 부러움도, 아쉬움도 뒤로한 채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만 익히며 살아간다.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져도 아들들은 여전히 뒷전이다. 노후 생활에 재미를 찾아보라고, 자기의 삶을 즐겨보라며 엉너리 치는 말만 한다. 주위에서도 앞으로 ‘백세시대’에는 혼자 사는 것은 당연하다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삶을 설계하라고 부추기는 말들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때같은 자식들 거두느라 온통 먹고 살 궁리만 했을 뿐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야 잘살고 못사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릿고개 시절에 그런 것들은 사치고, 방종이며, 죄짓는 일이었다. 자식이 전부이고, 희생만이 미래의 유일한 희망으로 알고 살았을 뿐이었다.
세상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대가족 아래 자식 바라기로 노후를 봉양 받던 시대를 기대하기는 더는 어렵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것도 책임과 의무, 혈연과 관례에 매인 관계보다는 보편적인 기초집단, 친밀한 인간관계의 확대 개념으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사람은 ‘들풀처럼 섞여 있으면서도 저 혼자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앞으로는 생의 공간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어리석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변을 놓아주고, 슬픔을 넘어서서 홀로서기 하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숫자 커다란 전화기를 끌어안고 여자는 오늘도 자식들에게 매달린다. 길어지는 통화 연결음에 표정 잃은 눈빛이 덜컹거린다. 노후가 아무리 편안할지라도 자식이 배제된 공간은 처음 가본 여행지처럼 낯선 느낌일 것이다. 주변머리나 너울가지 없는 자식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품에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 가장 큰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모양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그것은 다음 세대의 물음이고 염려가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대와 배경이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부모님들이 살아온 삶이 갑자기 방외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만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그 세대의 시공간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 그대로 마감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싶다.
딸이 없어 서러운 것이 아니라 딸 같은 마음을 가진 자식이 없어 외로운 것일 거다. 무뚝뚝해도 속정은 있다는 말은 남자들의 옹색한 변명인 것 같다. 만수받이나 보비위라 할지라도 적막강산 외딴섬에 마음의 쪽배라도 자주 띄어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의 그 외로움에 정작 나 자신이 가장 큰 가해자라는 죄스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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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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