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을 맑게 하는 싸늘한 기운이 서둘러 동백꽃을 벙글게 했다. 계절이 꽃을 품고, 검붉은 꽃이 <오동도 동백꽃처럼> 노랫가락에 팔락거린다. 남녘 바닷가 오동도에 무수히 피고 지는 붉은 꽃, 마주하는 연인들의 가슴팍을 설레게 한다. 이 노래 속 동백꽃은 먼 옛날 전설 속, 여인네의 수절(守節) 상흔을 아물고 있다.
노래 모티브 지역은 여수 앞바다 오동도, 사연은 그곳에 자생하는 동백꽃이다. 우리나라 동백(冬柏, 冬栢)은 중국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고 부른다. 동백은 겨울에 꽃이 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붉은색인데, 거문도 등 남쪽 바다 섬에서는 흰동백이 피기도 한다. 동백꽃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상징의 꽃이다.
연분홍빛 동백꽃은 / 세 번 핀다 하지요 / 한번은 나무에 피고 / 땅에 져서 두 번 / 세 번은 그대 가슴에 / 꽃송이 채 떨구고 마는 / 사랑 품은 동백꽃 / 가지마세요 돌아오세요 / 그날 밤의 그 언약 잊었나요 / 그 품에 잠들고 싶어 / 붉게 피었어요 / 오동도 동백꽃처럼 // 사랑일랑 변치 말자 / 맹세했던 그 사람 / 정 주고 마음도 주고 / 원망해서 보낸 / 그대를 사랑합니다 / 물결 드는 초승달 아래 / 애달파라 동백꽃 / 가지마세요 돌아오세요 / 그날 밤의 그 언약 잊었나요 / 그 품에 잠들고 싶어 / 붉게 피었어요 / 오동도 동백꽃처럼 // 그 품에 잠들고 싶어 / 붉게 피었어요 / 오동도 동백꽃처럼 / 오동도 동백꽃처럼.
사랑일랑 변치 말자 맹세했던 그 사람. 정 주고 마음도 주고 원망해서 보낸 그대, 물결(밀물) 드는 초승달 아래 동백꽃은 애달프다. 하필이면 초승달 아래인가. 초승달은 낮에 떠서 초저녁에 지는 달이다. 낮달이다. 이 달은 하늘에 떠 있으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연인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달에 비유된다. 그 달이 지기 전에 오동도 연인들은 사랑을 언약했었다.
오동도는 ‘바다의 꽃 섬’으로 불린다. 한때는 동백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옛날부터 이곳 일대에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梧桐島)라고 불렀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에는, 이곳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이 손수 심어서 활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는 해장죽(海藏竹)이 많아서 죽섬(竹島)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해장죽은 바다에 감추어진 대나무다.

이 섬 곳곳에는 5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 동백나무는 10월 하순부터 꽃봉오리를 내밀기 시작해, 새 봄 3월 하순까지 절정을 이룬다. 오동도의 동백꽃은 다른 곳에 비해 크기가 작고 촘촘하게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도 오동잎을 닮았단다.
옛날에 이 섬으로 귀양(歸養)을 온 한 부부가 땅을 개간하고 고기잡이를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도적이 들어 아내를 겁탈하려고 하였다. 이에 여인네는 바닷가 벼랑으로 도망을 치다가 떨어져 죽고 말았다. 고기잡이에서 돌아오던 남편이 바닷물 위에 떠 오른 아내의 시신을 거두어 섬 꼭대기에 묻었다. 그 뒤 아내의 무덤에서 절개를 상징하듯, 눈보라 속에서도 붉은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동백꽃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섬 전체로 번식되어 오늘에 이른단다.
그래서 동백꽃을 여심화(女心花)라고도 한다. 이 동백꽃은 3번 피어난단다. 동백나무 가지 위에서 한 번, 꽃떨기 채로 떨어진 땅바닥 위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팍에서 또 한 번 핀다. 이러한 사연을 얽은 노래가 <오동도 동백꽃처럼>이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목청에 걸린 <동백아가씨>의 동백은 프랑스 소설 『춘희』(椿姬)를 번역한 것을 모티브로 한 노래로 여기서 춘(椿)은 신령스럽다는 의미인데,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로 통한다. 프랑스 소설 『춘희』가 일본을 통해서 유입되면서 『동백아가씨』로 환생하였음이다. 이 소설을 모티브로 작곡한 주세폐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속에 등장하는 꽃도 동백꽃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100년사에 오동도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유행가는 많다. 1968년 문주란은 <오동도 에레지>를 열창했다. ‘여수항 오동도를 왜 내가 찾아왔나/ 그날 밤 그 물새는 왜 나를 울려주나/ 찢어진 빈 가슴에 알알이 뿌린 눈물/ 이 설움 몰라주는 박정한 님이었네/ 아~ 떠나간 사랑이었네.’
1971년 정영아는 <오동도 가시나>로 오동도 아가씨와 서울 간 도령님의 사랑을 읊었었다. ‘파도치는 바닷가에 갈매기 우는데/ 순진한 내 가슴에 돌을 던진 서울 도령님/ 동백꽃 다시 피면 오겠다고 하시더니/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왜 아니 오시는가요/ 아~ 밤이면 눈물짓는 오동도 가시나.’
순진한 내 가슴에 돌을 던진 서울 도령님~. 노랫말이 귀에 익었다. 유지나(본명 유순동)의 <미운 사내> 노래가 아물거려진다. ‘순진한 여자의 가슴에다 돌을 던진 사내야/ 떠나버릴 사람이라면 사랑한다 말은 왜 했나/ 활짝 핀 꽃처럼 웃던 얼굴이/ 웬 일인지 요즈음 우울해 졌네~ .’ 돌을 던진 그 사내~ 동백꽃이 다시 피면 돌아올까. 새 봄이 궁금해진다.
오동도의 전설을 새긴 비문도 간간한 소금바람에 또록하다. <동백꽃으로 피어난 여인의 순정>. ‘멀고 먼 옛날/ 오동 숲 우거진 오동도에/ 금빛 봉황이 날아와/ 오동 열매 따서 먹으며 놀았더래/ 봉황이 깃든 곳에는/ 새 임금이 나신다는 소문이 나자/ 왕명으로 오동 숲을 베었다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른 후 오동도에는/ 아리따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도적 떼에 쫓기던 여인/ 낭벼랑 창파에 몸을 던졌더래/ 바다에서 돌아온 지아비 소리소리 슬피 울며/ 오동도 기슭에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한설 내리치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는/ 여인의 붉은 순정 동백꽃으로 피어나고/ 그 푸른 정절 시누대로 돋았다네.’ 이 노래 속의 동백꽃은 여수시 시화(市花)이다.
오동도는 이제 섬이 아니다. 길이 768m의 방파제가 육지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여수시 수정동 오동도와 육지를 잇는 방파제,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이던 1935년 조선총독부 여수토목출장소가 신항만 건설을 위하여 착공하였다가, 태평양전쟁(1941~1945)으로 공사가 지연되어, 1945년 해방광복 무렵 완공되었는데, 이 방파제를 따라 도로가 개설되었고, 관광객들은 이 도로를 따라 걷거나 동백열차를 이용하여 오동도에 갈 수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절기와 해(年)의 연계지절(連繫之節)에 당신의 가슴팍에 붉은 동백꽃 한 떨기를 매달아 드린다. 다가오는 새해는 ‘푸른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이다. 육십간지의 41번째, 푸른색을 의미하는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을 합친 청룡(靑龍)이다. 가슴팍에 동백꽃을 매단 그대여~ 갑진년에는 부디 청룡의 등을 타고 등용문(登龍門)하시기를 기원드린다. <오동도 동백꽃처럼>를 절창한 최향은 본명 박지희, 1995년 익산 출생이다.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