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동방의 등불

이순영

그렇다. 어려울 때 옆에서 손 내밀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주위 사람들이 다 외면하고 따돌릴 때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난다. 개인에게도 고난의 시절이 있지만 한 국가에도 고난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100여 년 전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위로의 시를 지어 주었다. 그 시가 바로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이다. 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조선을 방문해 주길 요청받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방문할 수 없었지만 같은 아픔을 지닌 조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싸워서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준 격려의 송시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렇게 마음으로 위로해 주면 힘이 난다. 밥 먹다가도 힘이 나고 일하다가도 힘이 나고 앞이 안 보일 때도 힘이 난다. 깊은 슬픔의 동굴 속에 빠져 있지만 곧 햇살이 비치고 좋은 날이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 주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나도 지금 너랑 같은 시련을 겪고 있으니 우리 절망하지 말고 함께 일어서자고 손 내밀어주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법이다. 살 용기를 얻는 것은 누군가의 관심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우리 민족을 위해 지어 준 ‘동방의 등불’은 3·1운동 이후 독립에 대한 열망에 불타오르던 우리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주었다. 

 

우린 일어섰다. 그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 타고르가 말한 ‘동방의 등불’이 되어가고 있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공부하고 손발이 트도록 억척스럽게 일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 일류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세계 구석구석에 깔려 있고 우리 노래를 흥얼거리는 세계의 젊은이들은 가보고 싶은 나라를 코리아로 꼽는다. 국수주의에 매몰되었다고 꾸짖지 마라. 국수주의도 없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왕 취하는 거 국뽕에 취하면 좋지 않은가. 백 년 전 나라 잃고 초라하고 불쌍하게 울던 것을 생각하면 국뽕은 달나라에 가는 아폴로11호나 다름없다.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인간은 딴짓하기 마련이다. 먹고살 만하니까 폐기처분이 된 사회주의에 껄떡대고 삼대 세습의 막장 아이콘인 윗동네 정권에 아부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생각해보라. 그저 독립만 되면 소원이 없던 시절의 서러움을, 그 서러움을 위로해 주고 다독여 준 타고르의 시 한 편에 우린 얼마나 많은 감동과 힘을 얻었던가. 희망은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는 혁명적인 힘이다. 그 희망이라는 불씨조차 없었던 우리가 죽을 만큼 공부하고 일해서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되었는데 그 열매만 똑 따먹고 딴짓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타고르에게 있어서 ‘동방’은 어떤 의미였을까. 타고르는 ‘민족주의’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방에서 영원한 빛이 다시 빛날 것이다. 동방은 인류역사의 아침 태양이 태어난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지평선에 이미 동이 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나의 선조 현인들처럼 다시 한번 온 세계를 밝힐 동방의 일출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했다. 타고르는 식민지 백성이 가지는 아픔을 이심전심 느끼며 예언자적 세계관을 가지고 ‘동방의 등불’을 썼을 것이다. 

 

통속적이면서 심오한 이 시는 휴머니즘을 품고 자유와 정의를 갈구한다. 현실과 미래를 한 선상에 놓고 튼튼한 지지대를 조선인들의 손에 쥐여준다. 사랑, 미래, 희망 등을 합친 방대한 ‘종합영양제’을 만들어 허약한 조선인들에게 던져 주었다. 자기 코도 석자인데 말이다. 우리보다 더 긴 89년의 영국 식민지를 당한 인도를 생각하면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정겹다’처럼 조선과 인도는 얼굴만 봐도 정겨웠을지 모른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하지 않던가. 

 

타고르가 1916년 첫 번째 일본을 방문했을 때 최남선이 보낸 ‘청춘’지의 기자 진학문의 요청으로 ‘패자의 노래’를 조선민족에게 보냈다. ‘패자의 노래’는 최남선이 발간하던 ‘청춘’지에 1917년 11호에 ‘찢긴 이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영문 텍스트와 함께 실렸다. 이 시에서 ‘패자’는 수치스러운 일은 패배나 모욕이 아니고 무력에 의한 정복이라는 타고르의 신념이 역설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조선도 식민지요 인도도 식민지니 서로 위로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W. B. 예이츠는 1912년에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어느 무명의 인도인 작가가 썼다는 시 원고를 건네받아 읽어보고 크게 감동해서 추천서를 써 주었다. 예이츠가 그토록 감동한 타고르의 시가 실린 시집이 그 유명한 ‘기탄잘리’다. 식민지 백성들이 그러하듯이 타고르도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갖은 고생 하며 공부했지만 중퇴하고 만다. 부유한 집안의 대학 중퇴생에서 작가로 변신해 노벨문학상을 받고 저명인사가 된다. 

 

브라만이며 명문가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타고르는 간디가 여러 번 찾아와 함께 투쟁할 것을 제의했지만 거리를 두었다. 인도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했지만, 간디의 노선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타고르는 인도의 근대화를 지지했고 선민주의와 비합리성을 배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간디가 실천주의자라면 타고르는 이상주의자였다. 간디가 산이라면 타고르는 산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였다. 간디나 타고르 둘 다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안고 정치와 문학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조선의 백성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간디는 “타고르는 자신의 외국산 옷을 불태워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타고르는 “새들은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한다”라고 응수했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2.28 10:07 수정 2023.12.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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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