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산불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산불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취약지역 요소요소에 감시원을 배치하고, 스피커를 단 차량까지 동원해 산불을 조심하자며 쉴 새 없이 홍보에 열을 올린다. 그것도 모자라 각 지역 마을회관에 설치된 방송시설을 통해 시간 시간마다 산불 방지에 대한 안내 방송을 하면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오후 두 시 정각, 다시 또 녹음된 방송이 흘러나온다. 하도 많이 들어 놔서 이제는 아예 내용을 전부 외울 정도가 되었다.
“……산불 방지 계절 없고 산불 감시 너 나 없다/내가 좋아 가는 산에 내가 먼저 산불 조심/산불은 한순간 복구는 한평생/나무 심어 가꾼 정성 산불 막아 보존하자……”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나무 심어 가꾼 정성 산불 막아 보존하자’는 구절에 이르자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어느 누가 만든 홍보 문구인지는 모르겠으되 참 생각 없는 사람이구나 싶어서이다.
‘나무 심어 가꾼 정성 산불 막아 보존?’ 아니 그래, 대체 정성을 어떻게 무슨 수로 보존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 구절은 당연히 ‘정성 들여 심은 나무 산불 막아 보존하자’ 내지는 ‘애써 심고 가꾼 나무 산불 막아 보존하자’ 정도로 고쳐야 이치에 맞는 표현이 된다. 전 국민이 매일같이 듣고 접하는 이런 구호를 함부로 만들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이 하나뿐만이 아니다. 주의 깊게 살피면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오류투성이의 홍보 문구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그 글귀들은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일쑤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조금 규모가 크다 싶은 저수지를 만나면 다음과 같은 경고 표지판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곳은 수심이 깊고 위험하오니 낚시나 수영을 금합니다.”
여기서 ‘깊은 것’하고 ‘위험한 것’ 사이는 서로 대등한 지위를 가진 병렬의 관계가 아니다. 이 둘은 한 사물 현상이 다른 사물 현상의 원인이 되고, 그 다른 사물 현상은 먼저 사물 현상의 결과가 되는 인과의 관계에 있는 말이다. 이를테면 깊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깊기에 위험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깊고 위험하오니’가 아니라 ‘깊어 위험하오니’로 써야 어법에 맞는 표현이 된다.
이래 놓고 봐도 아직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상대를 특정하지 않고 막연한 대중을 향해 홍보하는 글귀에서 존칭의 의미를 지닌 선어말어미 ‘오’를 붙이는 것은 이치상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이곳은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낚시나 수영을 금합니다.’ 이렇게 바꾸어야 비로소 논리에 맞는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에 가면,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간 지점쯤 ‘오동수 약수터’라는 샘물이 자리하고 있다.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일이 없어서 경주 시민들은 물론 주변 지역 사람들도 등산을 겸해 즐겨 찾는 명소이다. 그 이름난 곳에 세워진 세 개의 입간판을 보면 이런 가관이 없다 싶을 만큼 너무도 엉터리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문구로 되어 있다.
“이곳은 오동수 약수터는 여러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물로 세수, 세족, 빨래, 오물투척 등 위생상 불결한 행동을 절대 하지 맙시다. - 불국동장”
이 입간판의 글귀가 어색한 표현이라는 사실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모국어 화자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똑똑한 아이 같으면 초등학생도 이렇게 쓰진 않는다. 물론 문장부터가 아예 비문非文이다. ‘이곳 오동수 약수터는 여러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물입니다. 방문객들은 세수, 세족, 빨래, 오물투척 등 위생상 불결한 행동을 절대 하지 맙시다.’처럼 두 문장으로 나누어야 논리에 맞는다.
백번 양보하여 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세상천지에 ‘이곳은 오동수 약수터는’이라고 두 개의 주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어디 있던가. 당연히 ‘이곳 오동수 약수터는’으로 바꾸어야 문법적으로 올바른 표현이 된다. 해마다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에, 이처럼 입간판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지각없이 마구잡이로 설치한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관계자의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이것이 어디 비단 경주 한 곳만의 문제이겠는가. 눈여겨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오류투성이의 홍보 문구들이 널려 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사회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기에 앞서,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겠다는 마음 자세부터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홍보 문구 하나를 만들더라도 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문맥상으로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이런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는 것 하나하나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책임 의식이 내 나라, 내 고장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