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삐비꽃이 피었네!

허정

겨울로 들어선 바람이 조락한 우듬지 사이에서 낯선 나그네마냥 두리번거린다. 하늘은 투명하고 양지 능선에 내려앉은 오후의 햇살은 국향처럼 복욱하다. 여름 계곡을 청량하게 넘실대던 산간수는 크고 작은 바위너설과 뭉우리돌로 제 모습을 드러낸 채 실개천으로 흐른다. 길섶 풀덤불에 씨앗을 여문 검붉은 열매들이 열없이 이울고 있다. 손으로 한 줌 훑어다가 걷는 길에 드문드문 흩뿌려본다. 생명의 잉태와 번식의 꿈에 조력한다는 기분이다. 식구들과 모처럼 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이었다.

 

산모롱이를 돌자 올망졸망한 무덤들이 나타난다. 고조부부터 마지막 입성한 아버지까지, 한 집안의 피붙이들이 집성촌이 되어 층계참으로 모여 앉았다. 입체화된 족보처럼 잘 그려진 가계도 같다. 몇 해 전만 해도 설피창이 같던 아버지 묘의 봉분도 뗏장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평소 바람대로 저승의 몸이나마 고향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예고 없는 갑작스러운 이별은 평생을 두고 가슴에 담아야 할 아픈 상처를 남겼다.

 

어렸을 때는 공동묘지를 보는 것이 무서운 일이었다. 해가 훤한데도 묘지는 어둡고 시커멓게 보였고 여름 더위에도 그곳은 춥고 차갑게만 느껴졌다. 끈적대는 습기가 뒷덜미를 당기거나 뒤엉킨 뿌리들이 땅속에서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아마도 죽음이란 상상이 두려웠을 것이다. 정이 들었거나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고 난 뒤부터 비로소 그런 구애한 기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소를 둘러본다. 메마른 풀들과 갈라진 흙더미, 놀라 달아나는 벌레들이 낯설다. 저마다의 손들이 호미가 되어 잡초들을 뽑거나 언틀먼틀한 봉분을 다독인다. 폐 질환으로 고생하던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손바닥 너머 전해오는 것 같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뜻밖이라는 듯 짧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삐비꽃이 피었네!”

 

오래된 추억 하나를 끄집어낸 것 같은 반가움이 앞선다. 제절 아래 언덕에 깃털 달린 새처럼 하얀 삐비꽃이 단장하듯 무리를 이루고 있다. 적막한 바람 소리를 품은 순결한 은빛 유혹. 솜털같이 만개한 영화의 계절을 털어내고 녹녹하고 끈기 있는 결실의 증례로 남은, 군살 없는 순례자들 같다. 유독 아버지 산소 앞에 학익진을 펼치며 피어난 삐비꽃이 새삼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갑자기 동네 외딴집으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살던 집에 비해 그곳은 훨씬 작고 초라했다. 돌담은 곳곳이 무너지고 가옥은 형편없이 낡았지만, 텅 빈 마당만큼은 무척 넓은 곳이었다. 손 볼 곳이 많았는데도 아버지가 처음으로 한 것은 그 빈터에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봉숭아, 맨드라미부터 수선화, 금낭화, 능소화, 구절초, 원추리 등 온갖 종류의 꽃들로 화단을 일구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같은 유실수를 비롯해 목련, 벚꽃, 생강나무, 배롱나무 들이 봄부터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펌프질하는 우물가 물길을 이용해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대문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길을 양분하고 대나무 살로 기다란 터널을 만들어 덩굴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엔 수세미와 여주와 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그 그늘에는 평상 하나가 터줏대감처럼 놓여 있었다. 숙제도 하고, 놀이도 하고, 참외도 먹고, 달콤한 낮잠도 자는 곳이었다.

 

어릴 적 가족사진의 배경에는 언제나 그 꽃밭이 있다. 한껏 멋을 내고 웃음 짓는 표정이지만 올망졸망한 우리는 따가운 햇볕에 하나같이 잔뜩 찌푸린 얼굴들이다. 아버지는 그 정원에서 늘 우리와 함께했다. 간짓대로 따 내린 새빨간 홍시를 손에 받아 쥐었을 때의 그 달콤함, 쩍쩍 벌어진 석류를 한입에 털어 넣고 신맛에 몸서리치던 그 싱그러움이 흑백사진들 사이에 아른거린다. 그곳은 남들이 보기에는 꽃과 나비와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정원이었지만 그 구석진 곳 어딘가에 슬픔의 자국들이 숨어있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은 나도 아버지가 되고부터였다.

 

아버지의 삶은 외로움이 많았다. 아주 어린 나이에 벌써 부모님을 여의었다. 혼자 들판을 쏘다니다 해가 저물어도 마중 나오는 엄마 품이 없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온종일 땀 흘려 일해도 저녁이면 돌아갈 집도, 반겨줄 가족도 없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 사랑의 보살핌에 얼마나 목말랐을까. 지치고 힘들 때 달려가 안길 포근한 품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몸 하나 기댈 곳이 없는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황량했을까. 너무나 그리운 이름이라 살아생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우리를 슬프게 했다. 언젠가는 단란하고 오붓한 가정을 일구리라 마음속에 단단히 꿈꾸었을 것이다. 아마 그 정원은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정물화이고 서사체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정원은 더없이 훈훈하고 든든한 유년의 뜰이었다.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궁하거나 더 바랄 것도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 늘 우리 곁에 맴돌았다. 내 편이 있어 세상이 두렵지도 않았고 지켜주는 울타리가 있어 외롭지도 않았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들면 새들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내게로 날아오고 바람은 민들레 꽃씨처럼 코끝을 간질대며 스쳐 갔다. 꿈속에서 들려오는 식구들의 목소리는 안전지대를 알려주는 야경꾼 요령처럼 마음을 더없이 평온하게 만들었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던 햇빛이 두 눈을 간질여주던 오후, 시간은 넉넉하고 세상은 정지한 듯 한가롭기만 했다.

 

산소에 핀 삐비꽃은 아버지가 가꾼 또 하나의 정원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자식이나 손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바람의 씨앗으로 심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바쁘겠지만 형제간에 자주 어울려 우애가 돈독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먼저 담았을 거다. 아버지의 유언이 그것이었다. 가족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사랑의 정원을 열심히 가꾸라는 것. 혹시 모른다. 달짝지근한 삐비풀로 허기를 면하려고 주머니 빵빵하게 넣고 다녔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살라고 주문하는 것인지도. 아버지도 그곳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삐비꽃 하나를 뽑아본다. 무 뽑히듯 꽃대궁이 빠져나오며 “삐비~익”하고 목관악기 피콜로처럼 튜닝 소리를 낸다. 방순(芳淳)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1.16 10:01 수정 2024.01.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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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