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문인들의 시비(詩碑) 공해

김관식

청백리 박수량(1491­1554)은 조선 명종 때 호조 참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등의 요직을 맡은 청백리로 알려진 인물이다.

 

『명종실록』에 그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는 관직에 있을 때 청빈한 생활을 몸소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세붕(周世鵬)과 깊이 사귀었는데. 사람됨이 곧고 신중하며, 예법을 잘 지키고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30여 년의 관리 생활에서도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결백해서 청백리로 뽑혔다. 그가 죽은 뒤 고향인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묻혔는데, 그의 묘 앞에는 아무런 공적이 기록되지 않은 백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훌륭한 분들도 살아있을 때 공적을 기록한 것이 그분에게 누가 될까봐 사후에 백비를 세웠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즈음 별다른 문학적 업적도 없을뿐더러 시도 시답잖은 자신의 시를 시비로 세워놓는 등 문인답지 않은 일을 벌여놓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이런 시인들은 지방자치단체가 특색사업으로 시비 공원을 만들거나 공원에 감상용으로 세워놓은 시비에 자신의 시를 새겨놓으려고 갖은 로비활동을 벌려 전국 각지의 명소에 시비들이 세워져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지역마다 문학사적으로 이름난 시인들을 시를 제쳐두고, 철면피가 되어 엉터리 시를 국민의 혈세로 시비로 세워 시빗거리가 되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지 난감하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이 살아있는 문인이라면, 자신의 시를 시비로 세우겠다고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해야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시비 공해를 일으키고 있으니 “나는 이렇게 엉터리 시를 쓰는 뻔뻔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공표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데도, 그것을 마치 자신의 처세가 뛰어난 것으로 오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있으니,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어찌 문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부터 널리 알려진 내로라하는 선배 시인들은 생전에 시비를 세우지 않았다. 이런 분들의 시가 새겨 있는 경우라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강변 정자에 목판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감히 시인으로서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닌 현존하는 향토 시인들이 지방자치단체 관계 공무원들과 밀착 외교를 통해 세금으로 그것도 돌에다가 자신의 시비를 세워놓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전국 각지의 명소를 더럽히고 있다.

 

심지어 이런 시비 중에는 그 지역을 비난한 시구가 들어있는가 하면, 일본말을 시어로 새겨놓은 것까지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내버려 두고 자랑하고 있는 정말로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기생들이 입던 한복 복장을 전통 한복을 입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꼴이나 외래어로 “바보”, 또는 “멍청이”라는 글자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뽐내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시비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자기 고장을 부끄럽게 하는 시비를 세워놓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한심한 모양새를 이대로 방치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떤 고장에서는 이런 시비를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마저도 예산 타령, 이미 세워진 시인의 눈치 살피기 등으로 묵살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곳도 있다. 이는 자기 고장의 치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후손들에게 정말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전국 명소에다 엉터리 시비를 그대로 방치해 놓고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고 시치미를 떼고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 것인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전국의 시비 공해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을 해서라도 문제의 시비를 그대로 둘 것인가? 교체해야 할 것인가?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를 위촉하여 점검해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시비는 반드시 교체해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첫째, 만약 현재 활동하고 있는 향토 시인의 시가 시비로 세워져 있는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 출신 문인 중 문학사의 검증을 거친 명시로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때 명소와 관련이 있는 시로 긍정적인 정서를 노래한 지방의 특색을 잘 살린 시를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시비를 세우는 목적은 명소의 분위기에 적합한 시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는 시여야 한다. 되도록 부정적인 정서로 기분을 언짢게 할 시비는 교체되어야 한다.

 

셋째, 현재의 감투 이력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시비는 반드시 교체하여야 한다. 시비는 현재 살아 있는 특정 시인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서 세워놓은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시를 통해 그 시대적인 문인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시여야 한다.

 

넷째. 통시적으로 그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인물의 시를 시비로 세워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현재의 인물은 나중에 평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 예로 친일한 문인들의 문학비가 여러 고장에서 제거해 버린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만약 그 지역 명소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기 위한 시라면 그 분위기와 정서에 적합한 시를 선정하여 시비로 세워야 한다.

 

여섯째, 개인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신 소유의 땅에 자신의 시를 세워놓은 것이야 사후 나쁜 평가를 받게 되므로 자신이 스스로 철거해야 함을 권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시비라면 마땅히 교체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교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된 뒤부터 지방정부가 마음대로 자기 고장을 알리기 위해 현재 알려진 지역 출신 문인의 시를 시비로 새겨놓고 있으나, 현재 알려진 시인이 대중들의 인기몰이로 잘못 과대하게 알려진 것이지 시적 완성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는 형편이 없는데도 허명이 알려진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평가는 전문가들만이 공정하게 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국 시비 평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엉터리의 시를 시비로 새겨놓은 것들은 반드시 교체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시비(詩碑) 공해를 추방하여 선진문화시민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4.01.22 10:13 수정 2024.01.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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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