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라면과 생 닭고기

김태식

그날도 예외 없이 방글라데시의 항구도시?치타공’에는 외항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뱃머리에 외항선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검은색 피부에다 열 서넛 살쯤은 되어 보이는 남녀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배가 닿자마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배 위에 올라온다. 

 

성비性比로 보아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서남아시아의 특징은 이 나라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아이를 업은 소녀도 있었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나 세관원의 제지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 선실이든 상관하지 않고 기웃거리다 사람이 있으면 다짜고짜 "Give me a ramyon."을 배고프게 외쳤다.  

 

1980년대 중반 세계를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로 영원히 갈라놓으려 했던 미국과 소련.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하면서 이념적인 편 가르기를 할 때 방글라데시는 이 두 강대국들의 좋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남한 면적에 불과한 땅덩어리에 1억이 넘는 인구. 연이은 군부 쿠데타로 정세가 불안한 나라. 식량난으로 배고픔이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들의 영향이 멀어지게 될 것을 우려해 많은 것을 투자하게 된다. 

 

이곳에 소련은 군인에게 필요한 무기를 제공했고 미국은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고 있었다. 미국이 식량을 공급해 주다 보니 자국의 비싼 인건비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서 만들어진 대안으로 식량 대신에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비료를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1년간의 미국 국무성 수송계약 기간에 내가 근무하는 선박이 투입되었다. 

 

미국에서 선적될 비료 생산지는 남부의 아주 작은 시골 갯마을이었다. 인구 3만 명 정도에 배 한 척만이 겨우 접안 할 수 있는 부두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비료 선적 작업을 하는 데는 대략 5일간의 기간이 소요된다. ‘파스카고울라’Pascagoula라는 지명을 가진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경치를 갖고 있었다. 일요일에는 낚시질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대부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손잡이 줄이 길게 달린 망태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큼지막한 닭고기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그 애들은 그것을 미끼로 해서 게crab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한 아이가 외쳤다. 

 

“게를 잡았어."

 

어떤 아이는 한두 번 해보고는 잘 잡히지를 않는다며 처음의 미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새것으로 바꾸어 넣는 것이었다. 

 

비료는 배가 고파서 라면 동냥을 해야 하는 나라로 보내어지고 닭고기로 미끼를 하기는커녕 먹어보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나라로 비료가 보내어지는 것이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도 분명 이 꼴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날 다른 때 보다 더 많은 양의 라면을 실었다. 그까짓 라면 열 상자 해봐야 통닭 두 마리 값에 불과 했으니 말이다. 더 싣고 싶어도 못 실었던 것은?파스카고울라?그곳에 라면이 더 없었기 때문이었다. 

 

15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날 그곳에는 금세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기라도 할 듯한 스콜이 내리고 있었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은 쓰지 않은 채였다. 아니 우산은 라면을 얻는데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라고 변명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곳에는 우산 따위는 구경하기가 힘드니 말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 것과 배고픔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비를 많이 맞은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즐거워했다. 라면 인심이 가장 좋은 한국인이 승선하고 있는 배가 들어왔으니 더욱 그랬다. 내가 준비했던 라면이 동이 났던 시간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의 귓전에는 쟁쟁히 들려오는 듯한 소리가 있다. 라면을 얻어가서 겨우 허기를 면했을 가난한 어린아이의 소리와 한두 마리의 게를 잡고 기뻐하며 닭고기를 버린 세계 제일의 부유한 나라 아이들의 소리가. 

 

“Give me a ramyon.”

“I caught a crab.”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1.23 10:51 수정 2024.01.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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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