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똑같은 말일지라도

곽흥렬

언제나처럼 아내와 단둘이서 아침상에 마주 앉았다. 이 반찬 저 반찬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던 아내의 수저가 순두부찌개에 가 닿는 순간 갑자기 얼어붙은 듯 멈췄다. 아내는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찌개 그릇에다 코를 들이밀고는 연신 킁킁거린다. 

 

지나가는 말투로 왜 그러느냐고 묻고는 안색을 살폈다.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나온 대답인즉슨, 찌개가 맛이 갔다는 것이다. “어디 한번 봐요?” 하며 아내가 하는 양을 따라 코를 가져가 보았다. 내 후각으로는 별반 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니 괜찮은 것 같은데……” 건네는 나의 반응에 “당신 코가 무뎌서 그렇지.”라며 핀잔을 준다. 

 

아내는 평소 음식을 코에다 갖다 대고 냄새를 맡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서 걸핏하면 변질 타령을 한다. 확적히는 모르겠으되, 어찌 생각하면 여러 차례 식탁에 오른 찬에 물려 은근히 새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은 속마음으로 비쳐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오늘 아침의 순두부찌개만 해도 그렇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아내는 상했다며 공연히 까탈을 부리는 것도 같다. 아내의 핀잔이 돌아온 순간,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불쑥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당신은 어째 꼭 개 코 같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내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뭐라고요? 내가 어째서 개코같은데……” 

 

아내의 느닷없는 역정에 일순 엇 뜨거워라 싶었다.

 

“글쎄 조금 진정하고 잘 한번 들어봐요. 내 얘긴 그게 ‘개코같다’는 소리가 아니라 ‘개 코 같다’는 소리라고.” 

 

아내는 도대체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느냐며 더욱 언성을 높인다. 나는 또 나대로 내 속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가 야속했다. 둘 사이에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사차원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우리말이 이렇게나 교감이 어려운 언어인 줄을 미처 몰랐다. 

 

잠시 후, 끓어오른 감정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 내 말이 듣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상대방의 오해를 살 만도 했겠다 싶다. ‘개코같다’와 ‘개 코 같다’는, 글자 모양으로는 똑같지만 띄어 읽기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로 인해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개코같다’는 표현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뜻인 데 반해, ‘개 코 같다’는 표현은 개의 코처럼 후각이 예민하다는 뜻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띄어 읽기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애당초 말을 꺼낼 때 ‘개 코 같다’ 앞에다 ‘코가’라는 표현을 넣어서 ‘코가 개 코 같다’ 했더라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을, 어쩌다 그 말을 빼먹은 것이 오해를 불러와 이런 사단이 생겨난 듯싶어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어쩌랴. 두 번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니 딱할 노릇이다.

 

문득, 학창 시절 작문 시간에 배웠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에서 띄어쓰기를 잘못하여 ‘아버지’ 뒤의 ‘가’ 자를 ‘방’ 자 앞에다 붙여놓으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되어버린다는 용례였다. 그때 당시 배꼽을 잡을 만큼 재미나게 배웠었기에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잊히지 않고 기억의 언저리에 갈무리되어 있다. 비록 우스갯소리일지언정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표현이 아닐까. 예의 문장에서처럼, 말을 붙이고 띄움에 따라 그 의미가 백팔십도로 달라지는 경우를 일상사에서 심심찮게 만나곤 한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시설이 있다. 이름하여 ‘서울시장애인의집’이다. 이 명칭이 오해를 불러오기에 딱 그만이다. 물론 ‘서울시 장애인의 집’이라고 띄어 읽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장’ 자를 ‘서울시’ 뒤에다 붙여 읽으면 ‘서울시장 애인의 집’이 되어버린다. 만일 가정을 가졌다면 죄 없는 서울시장이 일순간에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힐 수 있는 일 아닌가. 하기야 요즘엔 애인 하나 없는 사람은 ‘6급 장애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세상이 변했긴 하지만…….

 

똑같은 말일지라도 띄어쓰기 혹은 띄어 읽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완전히 엉뚱한 의미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우리말이다. 이것이 일쑤 대수롭잖아 보일지 모르는 띄어쓰기며 띄어 읽기 하나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여하튼 그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해명하여 아내의 오해를 풀기까지 적잖이 진땀을 뺐다. 한편으론 왜 그리,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물색없이 내질러 그 심기 거슬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참으로 어렵고도 복잡한 것이 사람살이임을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다. 

 

일상사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가 어디 꼭 의도하고 일어나는 일이던가. 앞으로는 그런 이유 같잖은 이유로 소모적인 설전이 벌어지지 아니하도록 언행을 삼가고, 그리고 무슨 말이든 발음을 할 때에도 좀 더 신중해야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1.29 10:58 수정 2024.01.29 11:31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광주루프탑카페 숲안에 문화복합공간 #로컬비즈니스탐험대 #우산동카페 #광주..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