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어린아이 같으니

이태상

버릇없이 어른한테 어디다 건방지게 말대꾸냐’ 

 

이런 호통을 어려서 맞거나 커서 놓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 아동심리학자들은 어린아이가 말대꾸하는 것이 부모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고 속단하지 말란다. 오히려 말대꾸 못하는 아이가 정상적인 성장 발달을 못해 문제아가 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자라면서 오만 가지 편견과 선입견 및 화석화된 고정관념의 눈가리개와 색안경이 우리에게 씌워지기 전 우리 모두 그랬듯이 어린아이는 세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애같이 말이다. 8·15해방 직후 내가 만으로 여덟 살 때 열다섯 살이나 위인 큰형님을 따라 난생처음으로 연극 구경을 갔었다. ‘애국자’로 자처하는 ‘민족 반역자’가 진짜 애국자들을 희생시켜 자기 일신의 부귀영화를 도모하는 얘기였던 것 같다. 연극이 클라이맥스로 끝나갈 무렵 이 가짜 애국자가 진짜 애국자들을 ‘민족 반역자’로 몰아 총살하려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총알처럼 일어나 있는 목청껏 외쳤다. 

 

“야, 이놈 바로 네가 악한 배신자 스파이다.”

 

극장 안의 관객들로부터 폭소가 터졌다. 그 어린 나이에 어디서 ‘배신자’니 ‘스파이’니 하는 말을 배워 썼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어른이 되고 할아버지가 된 나이에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꾸밈없이, 겁 없이 마음대로 뛰놀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립기 한량없다.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임금님의 이발사가 말 못해 미쳐 죽지 않기 위해 나무 구멍에다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인 다음에야 죽을병에서 살아났듯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무로 된 종이에다 글로 써보는 것이다. ‘눈뜬장님’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뜻에서다. 하루는 저 유명한 귀머거리 장님이었던 헬렌 켈러가 어떤 한 친구와 숲속으로 산책하는 동안 눈에 특별히 띄는 것이 없더라고 친구가 말하자(물론 장님 친구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켈러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으로 거닐면서 본 것이 별로 없다니. 앞 못 보는 나도 수많은 것을 발견하는데. 정묘 절묘하게 균형 잡힌 나뭇잎의 조화, 자작나무의 매끄러운 감촉, 소나무의 거친 껍질 등 눈먼 내가 눈 뜬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일이면 당신도 귀머거리 된다 생각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선율, 사람이 부르는 노랫소리, 지저귀는 새소리를 한껏 들으라고. 내일이면 당신의 촉각이 없어진다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만져보라고. 내일이면 당신이 맛도 냄새도 모르게 된다 생각하고 실컷 꽃의 향기도 맡고 음식 하나하나의 맛을 깊이 음미하라고. 당신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자극해 세상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온갖 즐거움을 맛보라고 말이다. 이 충고는 모든 사람에게 숨 쉬고 살아있는 동안 우리 삶을 만끽하라는 뜻이리라. 다음은 1990년 12월 6일자 뉴욕타임스지에 중국 우한(Wuhan)이란 곳에서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란 기자가 보낸 글이다.

 

키안 리쿤(Quian Likun)은 모범적인 대학생으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 때문에 한눈을 팔거나 하는 일 없이 열심히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 경주에도 나간다. 다만 키안 씨는 다른 일반 대학생들보다 다섯 배나 나이가 많은 백 하고도 두 살이다. 그리고 보통 대학생들은 1900년에 일어났던 ‘복서반란’(중국 비밀결사대원을 지칭한 복서를 따서 복서반란이라 하는데 외국인과 외세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중국민중봉기)과 1919년 청조(淸朝)의 멸망에 대해 배워야 하지만 키안 씨는 그럴 필요 없이 다 기억하고 있다. 키안 씨가 다니는 노인대학교는 중국 중부 양자강을 끼고 있는 주요 도시 우한에 있는데 학생 수가 8천이다. 5년 전에 설립된 이 학교는 지난 8년 동안에 중국에서 생긴 8백여 노인대학교 중의 하나이다.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경로사상이 있어서인지 아직은 후진국인데도 노인들을 위한 국가적인 배려와 시책이 놀랍고 인상적이다. 의지할 자녀가 없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살 ‘노인의 집’이 마련되어 있고 부락이나 도시마다 은퇴한 시민들의 건강과 오락 및 교육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있다.

 

노인들이 스스로를 도와 가족이나 사회에 덜 의존하도록 돕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더욱 사회에 공헌하며 노년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우한노인대학교 부총장인 루 지안예 씨는 말한다. 이 대학교에서는 미술, 디스코 춤, 서예, 브리지 카드놀이, 요리, 영어, 문학, 노인의 건강관리 등 123과목을 가르치는데 한 학기 학비가 미화로 5달러도 안 된다. 이 우한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학교를 못 다녀 문맹인 할머니들을 위해 글 가르쳐 주는 곳이 곳곳에 있다. 11억이 되는 중국 인구 가운데 은퇴 연령인 남자의 경우 60세 여자는 5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1억1천5백만 명에 달하고, 베이붐 세대가 장성하고 가족 계획으로 신생아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 전체 인구 가운데 노인 인구 비율이 앞으로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대부분의 중국 노인들은 자식들과 같이 살면서 손자 손녀들을 보살펴 줘야 하기 때문에 애들 부모가 일 나가고 애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노인대학교 수업을 받는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시내 각 주택가에 13개의 분교가 있다. 그리고 학교 운영은 주로 시정부 예산으로 하며 교수진은 근처 정규 대학 교수들이 적은 보수로 봉사하고 있다.

 

“교과 수준은 물론 정규 대학보다 낮고 또 깊이 들어가지도 않으나 노인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이 있고 학구열이 높은 까닭에 정규대학생들 가르치기보다 더 흥미롭다”

 

한 노인대학교 분교에서 중국 문학을 가르치는 주우 씨는 말한다. 그의 학생들 가운데 가장 근면하고 열심히 공분하는 학생이 바로 102세의 키안 씨이다. 키안 씨는 은퇴한 영농연구원으로 매 수업 시간을 위해 미리 예습도 잘해오고 수업 시간 중에는 그의 날카로운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단다. “당(唐)나라 시대 수준으로는 이 시가 별로이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어떤 현대시보다 우수하다”고 얼마 전 한 수업 시간에 선생님 주 씨가 칠판에 써놓고 강의하는 시 한 수에 대해 키안 씨가 평하더란다. 키안 씨는 혼자서 학교에 걸어 다니고 선생님의 강의를 따라갈 정도로 잘 듣고 본다. 그가 노인대학교에서 처음 들은 강의과목은 노인건강관리였는데 몇 달 전에 백 살로 세상 떠난 그의 부인과 건강이 안 좋은 그의 81세의 딸을 보살펴 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키안 씨는 말한다. 지난봄에 이 노인대학 체육대회 때 3백여 명의 노인 학생들이 2.3 마일 코스를 뛰는 경주에 키안 씨도 끼어 절뚝거리면서도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끝까지 코스를 마치기도 했단다. 전통적인 한시(漢詩)를 좋아한다는 키안 씨에게 그의 애송시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옛 한시를 그는 암송했다.

 

 

오늘 아침 구름은 

한 모습 안에 들 것 같고

바람은 살랑살랑 가볍기만 한데 

연못가를 거닐자니

꽃과 버들이 날 반겨주네.

지나는 사람들은 

내 가슴 속에 샘솟는 

이 기쁨을 모르리.

난 장난치는

어린아이 같으니.

꽃과 버들이 나를 반겨주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2.03 10:25 수정 2024.02.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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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