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교리에 사후 ‘연옥’이라는 공간 개념이 있다. 이를 이용해 교황이 면죄부(면벌부) 발행을 남발했다. 주목적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 비용 확보였지만, 다른 목적으로 전용도 했다. 이에 반기를 든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여 ‘95개조 의견서’(1517. 10. 31.)를 붙였다. 연옥에 관해 1할 이상 언급했다. 그 대표적인 조를 읽어 본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어떤 벌도 면제해 주지 못한다. 교회법에 따라 현생에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27. 헌금 상자에 던져 넣은 돈이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는 설교는 단지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일 따름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는 연옥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주 일부이긴 하나 한국의 개신교 목사와 사역자가 이를 인정한 사례를 소개한다.
사역자가 “음부가 연옥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누가 그런 말을 했지요? 음부는 연옥이 아닙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라고 물었다.
“어떤 목사가 그러던데요.”
“큰일을 일으킬 목사이군요.”
대화 내용은 여러 시인이 목격한 가운데 수개월에 거쳐 3차례 반복한 문답이다. 진짜 큰일을 일으키고도 남을 목사의 말이다. 사역자의 아들이 목사이다. 목사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이유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 속한 자들이다. 그 목사는 해당 교단의 대전 소재 신학대학교 강사이기도 하다. 신학적 관점에서나 인문학적 관점에서나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연옥의 근거를 시편 116편의 ‘음부’를 든 것이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시편 116 : 3-4)라는 내용이 연옥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연옥의 존재를 믿는 천주교 성경을 읽어 본다.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에우고 / 저승의 공포가 나를 덮쳐 / 나는 고난과 근심에 사로잡혔네. // 이에 나 주님을 받들어 불렀네. / “아, 주님 / 제 목숨을 살려 주소서.”(가톨릭 성경의 시편 116 : 3-4)
이처럼 천주교에서조차 ‘음부’를 ‘저승’의 개념으로 본다. ‘연옥’과는 거리가 멀다. 정통 보수 개신교회에서는 ‘음부’를 ‘지옥’의 개념으로 본다. 이러함에도 목사나 사역자의 입에서 ‘연옥’을 주장한다. 정통 보수 교단의 서울 강나루 소재 신학대학교에서 배출한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이단이다. 그 교단의 정식 사역자라면 성경과 교리 문답을 통과했을 것이다. 어떻게 통과했는지 궁금하다.
그 목사는 직업으로 선택한 듯하고, 사역자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면 믿음이라 착각하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는 예를 든다. 사역자는 “나는 시를 쓸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쓴다.”,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다.”라고 늘 떠벌린다. 마치 사도 바울인 양, 성경 저자인 양 행세한다.
이들 주장처럼 하나님의 계시나 영감으로 쓴 시라면 성경처럼 무오류의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글맞춤법부터 엉터리이다. 또한, 조각에 대비해 보면, 적어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 버금갈 감동과 예술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함량 미달의 자전 글을 시라고 우기는 수준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으로 바꾸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다. 이는 권위에의 호소 오류이다.
사역자의 말이 맞는다면, 자기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도 수준 이하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요즘 교회는 이런 함량 미달 교인과 성직자만 득실거리는 듯하다. 해당 교단에서는 종교 재판을 통해 이들을 파면시켜야 할 것이다. 박사 학위를 준 신학대학교에서는 학위를 취소함이 타당할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