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 칼럼] 『난중일기』에 나타나는 전라좌수영의 해자(垓子)

윤헌식

해자(垓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따라서 파놓은 구덩이를 말한다. 해자라고 하면 성곽의 둘레를 파서 만든 연못을 상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동서양의 중세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해자가 워낙 이러한 행태가 많기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 것이다. 해자는 반드시 물로 채워진 구덩이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성곽은 물이 없는 해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해자의 표기는 해자(垓子), 해자(海子), 호참(濠塹), 호(壕), 호(濠), 외호(外濠), 성호(城濠), 황(隍), 외황(外隍), 참(塹), 황참(隍塹), 굴강(掘江) 등 매우 다양하였다. 물이 있는 경우를 해자(垓子)로, 물이 없는 경우를 황(隍)으로 표기한다고도 하는데, 사료를 살펴보면 해자의 표기를 워낙 혼용하고 있어서 용어만으로 그것을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해자는 산성보다는 주로 평지성에서 발견된다. 거친 산비탈을 따라 축조된 산성은 대개 주변 지형만으로도 충분한 방어력을 가지기 때문에 굳이 해자를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평평한 평지에 세워진 평지성은 성 둘레에 해자를 설치하지 않으면 성곽의 방어력이 현전히 떨어진다. 해자가 성곽(특히 평지성)의 방어력 증대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성과 해자를 함께 일컬어 '성지(城池)’라고 표현하였다. 조선시대의 해자가 대개 규식화(規式化)하여 축조된 것도 해자의 필요성 때문에 제도적으로 강제한 까닭일 것이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 영성(營城)에도 해자가 존재하였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난중일기』에 나타나는 해자 관련 기록을 옮겨 놓은 것이다.

 

 

​『난중일기』 1592년 1월 11일

[원문] 西門外壕子四把許頹圮. ('壕子(호자)'는 해자와 같은 말이다.)

 

서문 밖의 해자가 4발쯤 무너졌다. (발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1발은 양팔을 벌린 정도의 길이이다.)

 

 

『난중일기』 1592년 2월 4일

[원문] 當夕下來 廵視垓坑.

 

저녁이 되어서야 내려와 해자 구덩이를 둘러보았다.

 

 

『난중일기』 1592년 2월 15일

[원문] 石手等 以新築浦坑多致頹落 决罪 使之更築.

 

석수들에게 새로 쌓은 포(전라좌수영)의 구덩이가 많이 무너졌기 때문에 벌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다시 쌓도록 하였다.

 

 

『난중일기』 1592년 3월 4일

[원문] 廵見西門垓坑及城加築䖏.

 

서문의 해자 구덩이와 성을 더 올려 쌓는 곳을 둘러 보았다.

 

 

『난중일기』 1월 11일의 기록을 살펴보면 서문 밖 해자가 무너졌다는 내용이 보인다.(여기서 서문은 전라좌수영의 서문을 가리킨다.) 만일 전라좌수영의 해자가 물이 채워져 있는 연못과 같은 형태였다면, 해자가 무너지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월 4일과 3월 4일의 기록은 해자를 '垓坑(해자 구덩이)'으로 표기하였다. 용어만 가지고 완전히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坑(구덩이)'이라는 한자를 쓴 점은 전라좌수영의 해자에 물이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다. 2월 15일 기록은 해자를 '浦坑'으로 표기하였는데, 전라좌수영의 포구(浦口)와 가까운 곳의 해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날의 기록 또한 전라좌수영 해자에 물이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관한 논문이나 연구서가 적지 않게 나와 있으며, 아직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도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을 조사한 연구서(『조선시대수군진조사』)가 발간되는 등 연구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수군진 유적이 그리 많지 않아서 연구에 한계가 있으며, 해자의 경우에는 관련 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앞으로 발굴 조사나 지표 조사가 진행되어 많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 

참고자료:

손영식, 2010, 『한국의 성곽』, 주류성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4, 『조선시대 수군진조사2 전라좌수영편』,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2.16 10:11 수정 2024.02.16 10:1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대청의 그거 왜 해?
광주루프탑카페 숲안에 문화복합공간 #로컬비즈니스탐험대 #우산동카페 #광주..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