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날개야 다시 돋아라

임이로

빈대가 뛰는 자리 위를 유리판으로 막으면, 빈대는 어느 순간 그 높이만큼만 뛰어오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을 우리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고 부른다. 특정 사회에서 개인이 가진 능력과 별개로 계층과 계급 등 사회 구조 원인 때문에 더 이상 성장 및 발전하지 못하는,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뜻한다. 

 

사회 구조적 차별. 말 어감이 참으로 무겁기 그지없다. 이 말이 주는 무력감과 비정함, 그리고 ‘혹여 내가 이 사회에서 고립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은 이 글을 쓰는 아침, 내 기분을 매우 언짢게 만든다.

 

구조와 시스템이 만드는 차별. 맞다. 그것은 정말 존재한다. 나아가 미래에 아무리 괜찮은 사회라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친구와 공원을 거닐다 인생의 크고 작은 고민을 나눌 때 “그건 사회 구조적 차별이 만든 문제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한 번 더 예를 들어 보자. 어느 날 가정폭력을 겪는 친구가 아버지 만행을 피해 우리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러 찾아왔다.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친구와 서로 마주 본다. 아이가 세상 떠나가라 울며 가족 이야기를 한다. 그 아이에게 나는 “그건 사회 구조적 차별이 만든 문제야.”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말한다면, 그게 설령 사실이라 해도 너무도 비정하지 않은가. 

 

이것은 또 다른 포기에 가깝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눈앞에 친구가 흘리는 눈물을 닦을 손수건 한 장 건네며 등 한번 토닥여 주는 게 더 현명해 보인다.

 

포기. 이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다. 청년 실업은 여전히 암담하고 가계 부채가 날로 급증해 우리 사회 경제 전망이 어둡다. 우리는 정말 난세에 살고 있다. 그러나 비록 사회 구조에 소외되고 차별받아도,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다. 그 원인이 내 가정형편이고, 사회가 만든 유리천장이어도 마찬가지다. 포기해 버리면, 정말 유리판을 걷어내도 더 높이 뛸 생각은 못 하고 그 높이만 오르락내리락하는 빈대 처지가 되고 말 거다. 

 

하지만 우린 빈대가 아니다. 희망을 품고 미래를 꿈꿀 줄 아는 ‘사람’이다. 장자(B.C396?~286)가 쓴 이야기 속 등장하는 붕새는, 큰 호수도 좁게 느껴질 정도로 그 몸집이 너무 거대해 오랜 시간을 날지 못했다. 매번 나는 연습을 해도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 땅에 고꾸라지고 넘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작은 몸집에 앙증맞은 참새들은 그런 붕새를 보며 “참 어렵게 산다.”라고 비아냥대며, 논밭에 자란 벼 높이만큼 오르락내리락하며 배를 채운다. 그러나 붕새는 포기하지 않았다. 온갖 시련과, 참새들 뭇매에도 굴하지 않고 날개를 펴는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알맞은 바람이 불었을 때, 마침내 붕새는 날아오른다. 하늘을 가릴 만큼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아주 높이, 저 멀리 날아간다. 훨훨. 좁디좁던 땅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그 모습이 실로 대단하고 경건해 모두가 우러러봤다고 한다. 장자의 붕새 이야기처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어려운 세상이 우리를 계속해서 포기하고 싶게 할지라도, 즉 당신이 지금 있는 땅이 비좁아 날개 펴는 일이 어려워 거추장스럽기만 해도, 섣불리 가진 날개를 꺾으면 안 된다. 다신 날아볼 시도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당장 고꾸라진 몸을 좁은 땅에서 일으켜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며 저 위에 무한히 뻗은 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있어서, 매스컴에서 빈번히 접하는 ‘구조적 차별’이란 말은 얼마나 비루하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희망과 낭만 없는 현실은 우리를 현재로부터 매번 소외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날개뼈는 생각보다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 붕새가 갇힌 비좁은 땅. 그것이 어떤 반성과 성찰을 해볼 기회가 될지언정 지레 겁내며 자신을 한계 짓지는 말자. 나라마저 빼앗겨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하늘을 비상하는 자유를 노래한 한 요절한 청춘이 쓴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1910~1937), <날개> 중에서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4.02.16 11:25 수정 2024.02.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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