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신 사회일수록 말이 많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 대 유행병이 번지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생활문화를 변화시켰다. 진실한 만남을 인간적인 체취를 느끼며 소통하는 인간관계마저도 겉치레 말놀이와 타산적인 개인주의 문화로 필요할 때만 관계하는 간헐적인 인간관계로 바꿔놓았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카톡 문화로 의사 타진을 하고, 만남을 원하지 않을 때는 묵묵부답하는 등 디지털 문명의 도구를 이용한 제삼자 개입 대리 인간관계 문화로 바뀌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적 손실을 보상받으려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노골화되어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찻집이나 음식점의 음식값이 폭등하여 만남이 더욱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오랫동안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사회적 거리 두기 문화가 인간다움의 만남을 계산적인 만남으로 변질시켜 놓은 것이다.
말이 많아졌다. 사람은 말을 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줄어들게 되어 스트레스가 더 쌓이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정신적인 압박감이 더해졌다. 그로 인해 정신건강을 해치게 되었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반사회적인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근 지하철역에서 묻지 마 폭행을 하는 반사회행동을 보인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나타난 사회현상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는 바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을 진술하고 있는데,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전문
고독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 의식으로 사람이라면 응당 숙명적인 고독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 고독에서 위안을 받는 방법은 사랑뿐이다. 사랑을 통해 사람은 고독한 또 하나의 나를 만나 위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사랑은 꽃향기가 되어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내면이 비어 있을 때 말이 많아진다. 빈 항아리에 대고 소리를 질러보면 자신이 지르는 소리가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무언가 가득 채워진 항아리에 대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울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이 욕심으로 가득 찼을 때 울림이 없다. 울림이 없으면 사람은 밖에서 울림을 찾으려고 필요 이상의 말을 꺼낸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남의 험담을 늘어놓는다거나 매스컴에 등장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생을 꺼내 지껄인다거나 지난 과거의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면이 공허해졌다는 증거다. 내면을 채우는 일은 독서와 사색, 운동, 사회봉사 활동 등 가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먼저 자신을 가꾸고 자유의지대로 여러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우리에게 사람의 근원적인 고독을 깨우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내면 항아리에 사랑의 꽃향기를 가득 채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내면의 항아리에 자신의 욕심을 가득 채워 놓았다. 그러니까 당연히 자신의 향기도 없어지고, 울림도 없어지고, 역겨운 구린내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서로 위안을 받기 위해 만나서 수다를 떨던 친구나 이웃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게 되자 외로움은 더해진 것이다. 그럴수록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야 하는데 내면의 항아리 속에 자신만의 욕심을 더 채워 놓으니 우울증이 찾아오게 되고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말이 많아지고 말할 상대가 없어지니 카톡으로 여기저기서 보내온 명 구절을 주고받으며 혼자 외로움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핸드폰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가 된 것이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통해 혼자만의 고독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결해 달라고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이 비어서 그 외로움을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떨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말 대신 디지털 문명의 기기인 핸드폰으로 카톡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독백을 하는 것이다. 종교에 심취한 사람은 종교 이야기를 남에게 강요하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정치인들이 말이나 행보를 재구성한 패러디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유포하는 등 핸드폰은 각 분야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깃거리를 퍼드리는 도구로 전락했다. 그나마 자신이 퍼뜨리는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도 가리지 않고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잡다한 세상의 뜬소문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다.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뜬소문을 전달하는 수다쟁이가 되는 것이다. 고독한 시대 말보다는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 내면의 향기를 전하는 디지털 기기의 문자 놀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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