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천사백오십여 년 전 인간 플라톤이다. 오래된 역사가 흐르는 철학과 예술의 도시 아테네에서 아버지 아리스톤과 어머니 페릭티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테네의 마지막 왕 코드로스의 후손이고 어머니는 정치가이자 시인인 솔론의 6대손이다. 솔론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종종 포세이돈의 후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아테네는 중앙에 리카베투스산이 높이 솟아있고 계곡 사이로 맑은 여울이 흐르며 동굴이 있는 곳이다.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고 가을에서 봄까지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기에 가끔 폭풍우나 소나기가 지나가곤 한다. 습하지 않고 적당히 건조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사색하기 좋아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궁리하곤 했다.
나는 역사가이자 문학비평가이며 변론술 교수인 디오니시오스에게 글을 배웠다. 또한 레슬링 선수인 아리스톤에게는 체육 교육을 받았다. 나는 체격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아리스톤은 나를 넓다는 의미를 가진 플라톤으로 불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리스토클레스라는 내 본명보다 별명인 플라톤을 더 많이 불렀다. 이름이 존재가 되듯 나는 그렇게 플라톤이 되었다. 스무 살 무렵 나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의 일원이 된다. 어느 날 비극 작품을 가지고 경연에 나서려고 하는데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운명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그의 말을 듣고 감명받아 그동안 써 두었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런데 스승인 소크라테스도 전날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 백조 새끼를 무릎 위에 놓고 있었는데 이 백조 새끼에게 갑자기 날개깃털이 돋아나더니 기뻐하며 소리 높여 울면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를 보고 ‘바로 이 친구가 그 백조로군’이라고 말했다. 나와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운명적인 만남으로 정치와 철학과 예술과 학문을 가지고 아테네를 이끌어갈 세기의 사제가 되었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세 가지의 길을 생각했다. 그 첫 번째가 시인이 되는 길이며 두 번째는 정치가가 되는 길이다. 세 번째는 철학자가 되어 그리스를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목표를 지향했다.
나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다행히 친척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정치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외당숙인 크리티아스가 가담한 ‘30인 정권’은 무능력했는데 그 와중에 권력 싸움 과정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나는 무자비하고 무서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하고 말았다. 과연 내가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회의가 일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보기로 하고 아테네에 민주정이 들어서고 곧 민주정에 들어갔다. 정치에 뛰어들어 보니 대부분의 법률은 폐기물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치는 엄청난 운이 있지 않고서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국가 제도를 비판하고 젊은이들을 현혹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배심원들의 투표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테네를 망쳐놓은 폭군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를 제자로 배출했기 때문이었다. 법치국가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민주정에 대한 절망을 넘어 혐오가 느껴졌다. 나는 다수의 다스림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수가 나쁘게 다스리면 그건 시민정치가 아니다. 다수가 다스리더라도 공공선에 따라 다스리는 시민정치를 해야 하는데 아테네 민주정에 나는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정치판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철학에 몰두하며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찾아 ‘대화편’을 집필했다. 이 시기에 나는 메가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등을 여행하며 종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에 대한 기초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학파를 만나 실천적 정신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며 나의 사상을 반성하는 계기를 얻었다. 나는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디오니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했지만, 디오니시오스의 귀족정치를 비난하고 말았다. 이 일로 디오니시오스의 분노를 얻어 노예로 팔렸으나 키레네 출신의 상인이자 철학자인 안니케리스가 거금을 주고 나를 사서 구출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조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돈을 모아 내 몸값을 내준 안니케리스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주려고 했으나 안니케리스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그 돈으로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마일 떨어진 헤로스 아카데모스 신전 근처에 ‘아카데미아’ 학당을 설립했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주로 대화를 통해 기학학 철학 등을 가르쳤다. 내 교육 목표는 철인 통치자를 기르는 데 있었다. 사람이 아닌 헌법에 기반한 통치 시스템을 확립하고 정치 전문가를 뽑아 권리를 민중에게 주어야 한다. 또한 이데아를 알고 있는 철학자가 국가를 다스릴 때만 정의로우므로 냉철한 이성을 갖춘 사람들만이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제자 양성에는 반드시 이성을 키우는 기하학과 철학을 필수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예술은 온화한 성격을 기르는 수준에서 그쳐야 하며 신체를 단련하고 현실에 참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므로 아카데미아에서는 ‘전인교육’을 실시했다.
사십 세 무렵부터 쭉 철학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책을 저술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에우티프론』, 『카르미데스』, 『라케스』, 『소히피아스』, 『이온』, 『프로타고라스』, 『리시스』, 『대 히피아스』, 『에우티데모스』, 『메넥세노스』, 『고르기아스』, 『국가』, 『메논』, 『크라틸로스』, 『향연』 『파이돈』, 『국가』 2권-10권, 『파이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소피스트』, 『정치가』 『필레보스』, 『법률』 등 방대한 작품 활동을 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나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식도 없었다. 철학이 나의 애인이었으며 벗이었으며 동반자였다. 철학하는 즐거움에 빠져 한세상 지혜의 숲을 거닐며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80세에 생을 마감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