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이순신 장군의 제2차당항포해전 당시 소소포는 어디일까

이봉수

 

제2차 당항포해전(1594년 3월 3~7일)이 벌어지기 직전인 1594년 2월경 일본군은 지금의 진해만을 중심으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당시 일본군 선박의 이동 상황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소소포(召所浦)는 『난중일기』 1594년 2월 8일과 29일에 등장하는 고성(固城)의 지명이다. 제2차 당항포해전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진해만과 주변 지도

 

소소포의 지명은 여러 사료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위치 추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시원하게 밝혀준 연구 자료는 찾기 힘들다. 소소포를 지금의 고성 당항만 상류의 속시개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다. 과연 소소포가 속시개와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자.

 

소소포의 지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료는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년 편찬)일 것이다. 이 책의 「고성현(固城縣)」 염분(塩盆)조에는 ‘율천리 소소포(栗川里召所浦)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가마인 염분이 율천리 소소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편찬)과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년 편찬)는 소소포의 위치를 기록하였는데, 읍치의 북쪽 10리 지점(召所浦 在縣北十里)이라고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는 고성의 동읍내면(東邑內面)에 소소리(召所里)가 있다고 기록하였는데, 소소포가 하나의 마을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성읍치가 있던 지금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시내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대략 10리(약 4km) 거리에 포구가 있을 만한 곳은 오직 당항만 상류 밖에 없다.

 

『1872년지방지도』는 소소포의 위치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래의 『1872년지방지도』를 살펴보면 소소포의 지명이 당항만 상류에 기록된 것을 알 수 있다.

 

『1872년지방지도』 고성현 지도: 자료출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금의 당항만 상류는 일부 지역이 매립되거나 간석지로 바뀌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본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현재 당항만 상류 간석지 일대를 종종 고유 지명으로 속시개(쏙시개, 쏙씨개)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는 정확한 지칭이 아니다. 아래의 1950년대와 2020년대 당항만 상류 주변 지도를 서로 비교해보면, 지금의 당항만 상류의 간석지와 간석지 아래 일부 지역이 매립된 곳이다. 즉, 1950년대만 하더라도 지금의 당항만 상류 간석지 일대는 바다였기 때문에 속시개로 불릴 수 없는 곳이다.

 

1950년대 당항만 상류 주변 지도: 자료출처 - 『경상남도 지명조사철』(1959년)(국토지리정보원)
2020년대 당항만 상류 주변 지도: 자료출처 – 국토정보플랫폼(국토지리정보원)
1969년 당항만 상류 주변 항공사진: 자료출처 – 국토정보플랫폼(국토지리정보원)

 

위 그림은 1969년 당항만 상류 주변을 찍은 항공사진이다. 연두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매립된 곳인데, 현대 지도보다 매립 흔적이 훨씬 분명하게 드러난다. 위 항공사진과 앞의 1950년대 지도 및 2020년대 지도를 서로 비교해보면 당항만 상류 지역의 본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당항만 상류 지역의 고성군 고성읍 죽계리에는 평계(坪溪)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이 마을은 ‘쏙씨(속시, 쏙시)’라는 고유 지명을 가지고 있다. 1959년의 『경상남도 지명조사철』은 평계 마을의 또 다른 지명을 ‘쏙씨’라고 기록하였다.

 

1959년 『경상남도 지명조사철』: 자료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쏙씨(쏙시, 속시)가 평계 마을을 가리키므로 쏙씨개(쏙시개, 속시개)는 본래 평계 마을과 인접한 당항만 해안 지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당항만 상류 지역이 매립되면서 쏙시개의 지명이 이동하여 당항만 상류 간석지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평계(쏙씨) 마을이 당항만 가장 상류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이곳이 소소포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평계 마을과 예전에 고성읍치가 있던 곳과의 거리도 주목할만하다. 평계 마을과 고성군청(예전의 고성읍치 중심부) 사이의 직선 거리는 대략 3.8km 정도이다. 아래는 국토지리정보원의 국토정보맵(https://map.ngii.go.kr/ms/map/NlipMap.do)에서 평계 마을과 고성군청 사이의 거리를 잰 사진이다.

 

고성군청과 평계 마을(쏙씨) 사이의 거리: 자료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맵

 

조선시대의 지리지에 나타난 거리는 직선거리가 아닌 도로 상의 거리이다. 고성읍성에서 쏙씨까지 직선 거리로 약 3.8km라면, 도로 상의 거리는 이보다 조금 더 먼 대략 4km 전후가 될 것이다. 4km는 약 10리에 해당하는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기록된 고성읍치로부터 소소포까지의 거리(召所浦 在縣北十里)와 거의 일치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해 보면 소소포는 지금의 경남 고성군 고성읍 죽계리 평계 마을(쏙씨)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yisoonsin.modoo.at

 

작성 2024.02.20 10:17 수정 2024.02.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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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