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선 나포 후 1개월이 지나자 모리타니의 법원에서 나포 사건을 심사하는 재판이 진행된다고 전 선원들을 데리고 갔다. 재판정에 들어서자, 이곳이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생겼다.
판사 1명에 통역관이 전부였다. 변론을 해줄 형식적인 변호사가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는 아랍어로 기소 내용을 듣고 불어와 영어로 통역하는 방식이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까스로 들은 내용은 ‘자국의 영해를 침범하여 불법으로 어로 행위를 하였으니 배를 압수하고 32명의 선원에 대해 1인당 10만 달러씩 총 32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장을 제외한 전 선원은 추방한다는 내용이었다. 정 기관장의 생각으로는 회사는 320만 달러의 엄청난 벌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었다. 하지만 현지 변호사는 회사가 이 정도의 벌금을 낼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아울러 항소를 하면서 선장을 제외한 31명의 선원들을 귀국(추방)시키기 위해 누아디브에서 유일한 숙박시설인‘사바호텔’에 투숙시켰다.
선장은 사하라사막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졌고 31명의 호텔 생활도 점점 장기화되어 1개월을 넘기고 있었다. 조식은 호텔 숙박비에 포함된 것이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대리점에서 정해 준 현지 식당으로 가서 바닷가재와 감자튀김으로 먹으니 끼니를 굶는 일은 없었다. 선장에게는 매일 2끼의 식사가 대리점 차량으로 배달되었는데 그때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잠시 짧은 얘기를 나눌 뿐이었다.
31명의 선원들이 한 달 동안 호텔 생활을 했으니 비용도 아주 많을 것이라 여겨질 때쯤에 대리점으로부터 반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회사에서 벌금을 낼 수 없으니 추방도 취소되어 31명의 선원들도 선장이 수감되어 있는 감방으로 재수감된다는 것이었다. 귀국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참아왔던 갑판장을 비롯한 여러 선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술을 구했는지 나누어 마시고 폭동을 일으킬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미 기관부 기관사 1명은 그들에게 구타당한 상태였고 술에 취한 그들의 최종 목표는 기관장에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정 기관장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항해사가 4명이나 있는데 선원 관리에 책임이 없는 기관장에게 왜 하극상을 계획했을까? 알고 보니 선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되자 1항사가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이다. 1항사는 선원 편에 서야 무사하겠다는 계산으로 ‘기관장이 매일 선장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는 시간을 이용하여 선장과 회사와 말을 맞춰 자신들이 귀국할 수 있는데도 막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정 기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좀 더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때 전 선원들을 감방으로 태우고 갈 대리점 차량이 도착했다. 정기관장은 술 냄새 풍기는 그들을 외면한 채 차에 올랐고 전 선원들은 사하라사막에 있는 감방으로 향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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