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작 밥 한 번 사 준 선배에겐 진심 어린 표정으로 “형 고마워”라고 감사를 표하면서 매일같이 따뜻한 밥 해 주시는 엄마에겐 귀찮다는 듯이 “물이나 줘”라며 무뚝뚝하게 내뱉고,
여자 친구 생일엔 장미꽃 다발에다 선물까지 안기며 최대한 아양을 떠는 말로 “생일 축하해~!” 하면서 부모님 생신엔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는 어투로 “엄마, 생일이었어?”라고 반문하는가 하면,
겨우 오 분 기다려 준 동료에겐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라고 깍듯이 사과를 하면서, 평생 기다려 주고 귀갓길 마중 나온 엄마에겐 “왜 나왔어?” 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극과 극의 대비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가운데 마무리 멘트가 이어진다.
“부모님께 이런 말 해 본 적 있나요? 고마워요, 엄마!”
‘말 한마디가 효도입니다.’
이러한 줄거리로 엮어진 텔레비전 공익광고에 눈길이 멎는다. 광고는 평소 일상생활 과정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내면을 꼬집어 놓았다.
화면을 바라다보고 있으려니 뜨겁게 차오르는 회한의 감정으로 가슴이 울컥해 온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중년의 여인은 바로 내 어머니이고, 대학생인 듯 보이는 풋풋한 청년은 다름 아닌 나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삼십 년 세월을 시난고난하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신 지 어언간 스무 해가 흘렀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도 내 어린 날들을 끝끝내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지켜주셨건만, 지나간 시절을 되돌아보니 당신 살아생전에 고맙다는 말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생신 때도 축하드린다는 한마디조차 건넬 줄 몰랐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대신 허구한 날 툭하면 투정이나 부리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줄 알았던 지지리도 못난 자식이었다. 광고에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효도라는데, “어무이, 고맙심더”, 이렇게나 쉬운 그 말 한마디가 뭐 그리 어려웠다고 그 말 한마디에 그렇게도 인색했었을까. 날이 가고 달이 흐를수록 두고두고 회한만 더해 온다.
‘부모불효사후회父母不孝死後悔’,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뉘우치게 되는 열 가지 일 가운데 맨 첫 번째로 꼽고 있는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의 이 덕목에 가슴을 친다. 왜 진즉 깨닫지 못했던가. 옛 말씀 어느 하나 그른 것 있으랴만, 부모 살아생전에 불효하면 세상 떠난 뒤에 후회한다는 가르침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로 스스로 변명거리를 삼아 보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뼈저린 뉘우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어머니의 일생은 더도 덜도 아닌, ‘사모곡’이라는 대중가요 가사 속의 삶 그대로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로 애옥살이 살림을 꾸려 가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날이 없었던 고달픈 생애였다.
“저녁노을 질 때까지 호밋자루 벗을 삼아…… 땀에 찌든 삼베 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 가신 어머니…….”
어찌 이리 잘도 그렸을까. 내 어머니가 영락없이 그랬다. 사무치는 회한으로 울부짖듯이 토해내는 가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나의 심경을 고스란히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고개 들어 허공으로 눈길을 보낸다. 저 멀리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져난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