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어느 지인의 1980년대의 회상 – 사하라 사막의 감옥

김태식

감방의 전면은 철조망으로 겹겹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고 가운데에는 제법 널찍한 마당이 있으며 한쪽에는 간수들의 방과 아프리카 지역의 온갖 잡범들을 가둬 놓은 꽤 큰 방이 있었다. ㄷ자 형식으로 지어진 감방 가운데에 화장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도 여러 개의 수용시설이 있었다. 

 

정기관장을 비롯한 전 선원들은 호텔과는 전혀 다른 수용시설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한데도 술을 마신 갑판장 이하 갑판원들이 무리를 지어 정 기관장에게로 다가갔다. 금세라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처럼 보였다. 미래에 대한 꿈도 깨어지고 귀국의 길도 멀어졌다고 판단한 그들은 선장이 부재중이니 그중에서 가장 책임 있는 직책인 20대의 기관장에게 테러를 가해 보겠다는 의도였다.

 

40대 중반의 갑판장은 평소에는‘기관장님’이라고 존칭을 사용했지만 이미 술에 취했고 갑판원들과 사전모의를 했던 터인지라 가까이 다가오더니 ‘어이! 기관장’이라고 불손한 호칭을 썼다. 이 순간 정기관장은 이들에게 집단구타라도 당한다면 자신에 대한 불명예는 물론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 기관장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갑판장의 가슴팍을 발길질로 내려 찧었다. 갑판장이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자 다른 갑판원들이 달려들 기세였다. 무리를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총을 든 군인 감시병에게 손짓, 발짓하며 소리쳤다.

 

“난동을 부리는 저 녀석들을 감방으로 집어넣어라.”

 

군인들은 그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감방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와중에 선원들의 난동이라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울분이 풀리지 않아 옆방에 수감되어 있는 선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선장도 이러한 상황을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 공간으로 철문에 조그마하게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다. 

 

괘씸한 건 갑판장이 아니라 선원들을 선동한 1등항해사였다. 선장이 부재중일 때 그 역할을 대신하고 선원들을 안정시켜야 할 직책의 1등항해사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던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선장은 경비병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1등항해사를 불러내어 군인들과 전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구타를 했다. 선장은 이미 이성을 잃은 채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아무도 이런 상황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선장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전 선원들이 인정하고 있었다. 

 

단체생활에서 유언비어나 잘못된 소문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멈추고 난 뒤에 전 선원들은 또 다시 기약 없는 수감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어두운 감방으로 향했다.

 

감방 안에는 전깃불도 없으니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어디가 벽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둠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 흑인 경비병들의 새빨간 눈동자와 하얀 치아만이 밤하늘의 별처럼 비치고 있었다. 일반 잡범들과 함께 수감되어 있는 전 선원들 속에는 감방장으로 통하는 현지인 수감자가 있었다. 몸집이 아주 큰 그는 죄목이 살인죄였다. 마치 고릴라를 연상하게 하는 그는 성질이 포악해서 발에는 족쇄를 차고 있었으며 종신형을 받았다고 했다.

 

절도죄로 잡혀 온 세네갈 국적의 한 수감자는 20년 형을 살고 있었으며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가 잡혀 온 범죄자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의 형량은 법에 의한 공정한 것이 아니고 이들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정당한 감형을 받을 의사도 없어 보였다. 이른바 사법 질서가 없는 무법천지였다. 수감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워 담배도 피울 수 있었다.  

 

쇠사슬을 차고 다니는 감방장은 전 선원들이 외국인이라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담배나 개인 소지품이 분실되면 금세 흑인 수감자들을 다그쳐 되돌려 주기도 했다. 흑인 죄수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곡물을 기름에 찐 것처럼 보이는 음식이었는데 하루에 두 번 배식해 주면 빙 둘러앉아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집어 먹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대리점이 있었기에 시내에 있는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가 배달되었다. 한 사람당 바닷가재 두 마리와 감자튀김 그리고 케첩이 제공되고 있었기에 먹는 것은 그런대로 어려움이 없었다. 배고픈 다른 죄수들이 보고 있는데 모두 먹을 수 없어 한 마리는 남겨 그들도 특식을 맛보게 했다. 서열에 맞춰 허겁지겁 먹어 대는 그들에게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느껴지곤 했다. 눈물겨운 인간들의 애처로움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흑인들은 식사가 끝나면 그들의 식습관대로 차를 마셔야 하는데 물을 끓일 수 있는 장비가 없으니 감방 안에서 화로에 숯불을 피워 물을 끓이는 것이었다. 감방 안의 실내공기도 탁하고 덥기도 한데 숯불까지 피우니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하는데 어느 경비병도 그러한 행위를 제지하지 않았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2.27 10:17 수정 2024.02.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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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