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기억을 걷는 시간

임이로

최근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봄비는 가볍게 흩뿌리며 얇은 빗발로 특유의 물 냄새를 풍기는데, 예전에 할머니 집에 묵을 때 밤에 내리는 비를 구경하다, 할머니께서 봄비가 잘 내리면 그 한 해 농사가 잘된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났다. 참 신기했다. 비가 내리는 모양새를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게.

 

근래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헤어진 연인과 지냈던 흔적을 모아 한 공간에 가득 전시하는 장면을 봤다. 같이 지낸 시간이 오래된 만큼, 공간을 빼곡히 채운 커플도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지나간 시간 기록을 방에 빼곡히 채우는 순간, 저 공간에 입장한 사람도 과거로 돌아가는, 마치 블랙홀 같은 시간의 틈에 빨려가는 느낌이 들 거 같아서. 그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말했듯이 시간은 공간이고, 공간은 시간이지. 그래서 시공간이라 부르지. 아하.

비록 방송을 위한 극적인 효과를 위한 연출이어도, 연인이 지나온 세월이 주는 그 강력한 밀도감은 보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이 물밀듯 밀려오는 깊은 감정을 느끼게 했다.

 

오늘날 우리는 전자기기에 떠 있는 디지털 숫자를 보며 대부분 시간을 기억하고 인식한다. 그러나 근현대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에는 해가 뜨면 농사를 지으러 나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옛말에는 그런 흔적들이 많다. 낮이 가장 긴 날이면 하지(夏至)라 불렀고, 밤이 가장 긴 날이면 동지(夏至)라 불렀다. 그리고 그런 날을 기념해 팥죽도 먹고 부럼도 깼다. 그것이 차츰 쌓여, 우리 민족의 문화와 관습이 되었다.

 

즉, 지금 사용하는 시간 개념보다 좀 더 공간을 연상하는 감각적 이미지를 담기 좋았다. 특히 ‘해가 진다’는 의미를 ‘땅거미가 진다’라고 말하는 우리식 표현을 나는 참 좋아한다. 외국 문화에도 이런 흔적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해가 뜨고 질 때, 일종의 빛 산란으로 모든 세상이 파래지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그래서 나는 간혹 한가한 시간에 얼굴에 팩을 하거나 요리하는 등 특정 시간을 재야 할 때, 타이머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 곡 개수로 시간을 잰다. 한 곡이 약 3~5분 정도 하니, 5곡을 들으면 20분 정도 지났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매번 타이머를 맞추어 머리가 지끈지끈한 알람 소리를 듣는 것보다 백번 낫다. 좀 더 내 시간을 단순 숫자 배열이 아니라 당시에 내가 하는 일, 함께하는 사람, 기억 그리고 공간으로 기억하면 좀 더 소중한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 일상에 숨통이 트인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계, 그러니까 이 공간은 시간의 연속이다. 인간의 뇌는 연속된 시간으로부터 `마디`를 만들어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예를 들어, 각종 기념일이나 점심시간 같은. 

 

바삐 사는 현대인으로서, 이러한 삶의 마디들을 점점 챙기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가 시간을 숫자와 타이머로 한정해 인식하는 습관 때문에 세월과 삶의 숭고가 퇴색될지 걱정이다.

 

시간이란 사실, 인생이란 새하얀 도화지를 지금 함께 있는 사람, 날씨, 장소 그리고 감정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워나갈 수채화 물감 재료니까. 우리는 인생이란 그림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 우리는 가끔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4.03.01 11:31 수정 2024.03.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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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