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문명의 이기, 이기를 가르치다

곽흥렬

무릇 세상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시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인가 보다. 성서 창세기에도 선악과善惡果 이야기가 나오듯, 조화주가 세상을 만들 때 미리 그렇게 점지해 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비단 조화주의 숨은 뜻에만 한하겠는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利器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속성상 이기와 흉기의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문명인가 한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사람들은 동물적 속성으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일상생활 과정에서 이런저런 위험성이 높아지고 인간성이 메말라져 버리게 한 부작용을 낳았다. 

 문명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생활에 편리를 주는 이기가 되는 반면, 잘못 사용하면 삶을 망가뜨리는 흉기로 돌변하고 만다. 

 

사람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건이 오히려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기도 하고, 급기야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냉장고만 해도 그렇다.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절임 문화로 위암 발병률이 높았었다. 그러던 것이, 냉장고의 발명으로 간을 심심하게 하더라도 음식물이 쉬 상하지 않고 오래 신선도가 유지되다 보니 위암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더불어 삶’이라는 미덕을 잃고 말았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이 평소 신통하기가 이를 데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까딱 잘못해서 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평생 불구의 몸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목숨마저 담보해야 한다. 텔레비전은 또 어떤가. 적당히 이용만 하면 그지없이 종요로운 도구이지만, 이 역시 정도가 지나치면 자폐를 낳고 치매를 부른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수많은 전열기구인들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다. 잘만 쓰면 더없이 편리한 물건인 것이, 자칫 부주의하면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마저 앗아갈 수 있다. 

 

여기서 이러한 문명의 이기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 딱 한 가지만 들라면 과연 무엇을 지목할 수 있을까. 짧은 소견인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단연코 냉장고를 으뜸으로 꼽고 싶다. 왜냐하면 냉장고야말로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아름다운 질서를 망가뜨리는 속성을 지닌 이기심을 조장하는 데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없던 지난 시절엔 음식물을 장시간 보관할 수가 없었다. 조리를 하고 나서 하루 이틀만 지나도 변질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아까운 음식을 버릴 바에야 차라리 이웃사촌끼리 나누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새로 만든 음식은 자연스럽게 옆집 담장을 넘었다. 저절로 나눔의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었다. 

 

냉장고라는 신통방통하기 그지없는 음식물 저장기기가 발명됨으로써 이 아름다운 나눔의 미덕이 사라져 버렸다. 무엇이든 그 안에 쑤셔 넣다 보니 냉장고는 게걸들린 귀신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 치운다. 일단 들어갔다 하면 나올 줄을 모르는 것이 냉장고의 속성인가 보다. 얼마든지 오래 저장할 수가 있으니 굳이 나올 필요도 없다. 하지만 냉장고라고 해서 음식물이 무한정 안 상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냉장고 안에서는 음식물이 썩어나가는데도 냉장고 밖에서는 한 끼 먹을거리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그 용량마저 갈수록 더욱더 커지는 추세에 있다. 자연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의 양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그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기는커녕 세월이 흐를수록 나눔의 정신과는 점점 거꾸로 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가 이기利己를 가르친다. 역설적이게도, 냉장고라는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해 사람들은 시나브로 베푸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이기심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를 바라다보고 있으면, 잔칫날 손님들에게 대접하려고 젖소의 우유를 한 달 동안이나 짜지 않았다가 정작 그날이 되었을 때는 젖이 말라버려 한 방울도 베풀지 못하고 말았다는 어느 어리석은 농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달콤한 문명의 이기를 맛본 요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이런 것들 없이 살아가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다며 아우성을 칠 게 뻔하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어지다 보니, 우리들 자신도 모르게 ‘생활의 편리’라는 달콤한 꿀단지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불편함이 문제 해결의 답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외친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조금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가능한 한 문명의 힘에 덜 의지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 존재의 타고난 본성을 되찾는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참 동안 원고를 붙들고 씨름을 하였더니 배가 출출해 온다. 뭐 좀 입맛 다실 거리라도 없나 싶어 두리번거린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냉장고 문에 손이 가 있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3.04 10:59 수정 2024.03.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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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