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모스를 사랑한 소년

이태상

소년은 달의 조각과 별똥별들이 동산의 풀숲에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더구나 소년은 달의 조각과 별똥별들이 떨어진 곳에서 코스모스가 피어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밤하늘에 달이 돋았다. 소년은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어서 넘어간 동산을 바라보았다. 

 

늘 불어오던 바람, 변함없이 떠 있는 달, 그리고 밤하늘에 널려 있는 별들이 하나둘씩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오는 것은 한 조종사가 사막에서 어린왕자를 만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소년은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동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여름밤 동산에 흐르는 풀냄새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소년은 동화 『어린왕자』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어린왕자』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었다. 

 

‘너무 이상한 일을 당했을 때는 그것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실, 소년은 그 말뜻을 잘 알지 못했다.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별이 움직이고, 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동산 봉우리에 다다르자 어린왕자가 소년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 

 

소년도 어린왕자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어린왕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왜, 웃어?” 

 

소년이 어린왕자에게 물었다. 어린왕자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미안해. 네가 마치 유령 같아서 웃음이 나왔어. 정말 미안해.” 

 

소년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소년이 말했다. 

 

“오늘은 이상해. 밤하늘의 달이 점점 커지고, 별이 흔들……. 유령처럼 아버지가 보여. 이런 적이 없었거든.” 

 

어린왕자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등 뒤에는 30명의 유령들이 서 있대.”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비율이 바로 30대 1이기 때문이래. 태초부터 약 일천억 명의 사람들이 지구라는 행성을 누볐다고 하던데?” 

“누,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 

“누구긴 누구야, 이곳 지구에서 살다 간 사람이 그랬지.” 

“그, 그게 누구냐고?” 

“아서 클라크라는 사람인데 알겠니?” 

“아, 아니 몰라.”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싶더니 어린왕자가 다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왜 자꾸 웃어?” 

“그 숫자가 참 재미있잖아. 태초부터 지금까지 지구라는 행성을 누빈 사람들이 약 일천억 명이라던데 은하수에 존재하는 별의 숫자도 약 일천억 개거든.” 

“저,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이 우주 안에 자기만의 별을 하나씩 갖고 있는 셈이지.” 

 

소년은 달과 별을 번갈아 쳐다보며 침묵을 지켰다. 너무 이상한 말을 들어서 그것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침묵을 깨고 어린왕자가 물었다. 

 

“떠날 거니?”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지.” 

“별은 왜 자꾸 흔들리는 거지? 달은 또 왜 저렇게 커지는 거지? 저러다 터지고 말겠어.” 

 

소년은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허사였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동산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난 떠날 거야. 안녕!” 

 

소년이 어린왕자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소년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린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달이 팽창하여 소리 없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달의 조각과 별똥별들이 동산의 풀숲에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더구나 소년은 달의 조각과 별똥별들이 떨어진 곳에서 코스모스가 피어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소년은 그렇게 집을 나와 길을 떠났을 뿐이고, 사람들은 그러한 소년이 가출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떠나온 여행길에서 시를 쓰며 깊어가는 여름밤을 보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3.09 10:17 수정 2024.03.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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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