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어느 지인의 1980년대의 회상 – 석방

김태식

모든 선원들이 범법자의 신세가 되어 배와 함께 모리타니의 경비정에 나포되어 누아디브로 끌려와 유치장에서 호텔로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감방에 수감된 날들도 어느새 석 달을 향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항소심 판결이 있는 날 선장만 대표로 출석을 했다. 1차 공판에서 선원 1인당 10만 달러의 벌금이 선고되었기에 변호사를 선임하였고 이날이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다.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장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길 애타게 기원하고 있었다. 

 

항소심 판결은 이랬다.

 

“모리타니의 영해를 침범하여 불법조업을 한 것은 선장을 포함한 4명의 항해사들에게만 책임이 있으니 5명을 제외한 27명의 선원들은 석방한다.”

 

정 기관장은 석방된다는 기쁨보다는 선장 이하 4명의 항해사들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에 가슴이 아려왔다. 항소심 판결대로 석방이 결정된 전 선원들은 배에서 짐을 챙겨 호텔로 가서 대충 씻고 야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회사 기지장은 인솔자인 정 기관장에게 최종 도착지인 서울행 비행기 티켓과 함께 300달러를 건네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부푼 꿈을 안고 누아디브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티켓을 당일치기로 급히 예약했기에 파리에서 서울행 좌석은 전부 대기표뿐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나중의 문제였고 이 지긋지긋한 사막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단 파리행 아프리카항공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움직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혹시 또 공항경찰이 다시 체포하러 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가슴은 콩닥콩닥 도리질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의 랜딩기어가 접히고 공항 불빛이 비행기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희미해져 갈 무렵 완전히 석방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마음도 진정되었다. 

 

정 기관장은 수감되었던 감방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그 어떤 이유를 붙일 수도 없고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에 북받친 눈물이 밤하늘에 뿌려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한국으로 가는구나! 라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니 더욱 더 해방감을 느낀 것은 다시 되뇌이고 싶지 않은 처절한 사막의 감방을 벗어난다는 일이었다.

 

이른 새벽에 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한항공 서울행 비행기편을 알아보니 이미 만석이었고 일본항공을 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후에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모리타니 감방을 벗어나면 금세라도 한국으로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비행기 좌석의 만석 속에 묻히고 있었다. 

 

도대체 이틀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서울 본사와 라스팔마스 기지장에게 연락을 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답변과 함께 이틀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프랑스 한국대사관에도 연락을 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대사관 직원의 답변은 이랬다.

 

“대사관에서 오를리 공항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다.”

 

처음 연락할 때부터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섭섭했다. 경비가 발생한다면 회사 본사에 보고를 해서 부담하겠다고 해도 허공 속에 메아리로 날아갈 뿐이었다. 물론 대사관 업무가 많아 모든 일에 신경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선원들이 3개월 동안 억류되었다가 석방되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 대한 도움을 청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는 과대한 홀대였다. 8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 해외대사관의 현주소를 말해 주고 있었다.

 

서울행 비행기 탑승까지 꼬박 48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식사였다. 잠은 공항 구석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씻으면 되지만 굶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솔자인 정 기관장은 전 선원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할 의무까지 짊어졌다. 식사 시간이 되어 발매자인 아프리카항공을 찾아가서 우리가 공항에서 이틀 동안 대기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들의 책임이니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공항 내에 있는 식당의 식권을 건네주었다. 

 

공항에서 지나가는 유럽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눈에 잘 띄지 않게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시간은 흘러 배가 허기를 느낄 때 쯤 정 기관장은 식권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항공 사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유리벽에 큰 대자보가 한 장 달랑 붙어 있었다. 대자보에 적힌 프랑스어와 영어를 대충 맞추어 보니 “지금 이 시간부터 아프리카항공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작은 희망마저도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이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3.12 09:16 수정 2024.03.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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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