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우리말을 옥죄는 시

신기용

외래어 표기와 영문 표기 메뉴판이 대세인 시대이다. 정상일까?

 

K—팝의 영어 가사는 외국인에게 먹혔다. 접근성을 쉽게 하는 기능이 먹힌 것이다. 대중가요의 대중성이 세계화라는 목적과 결합하여 성공한 사례이다. 영어 가사 삽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 대중가요의 세계화를 위한 목적성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시에 외국어와 외래어가 판을 친다면 정상일까? 끔찍한 일이다. 우리말을 빛나게 해야 할 시에 외국어와 외래어가 판친다면, 그건 우리말을 옥죄고 말살하는 짓일 수 있다. 

 

2024년 신춘문예 당선작 가운데 우리말을 옥죄는 외국어와 외래어가 버젓이 자리 잡은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당선자의 문제라기보다 심사한 자의 안목이 더 큰 문제인 듯하다. 시인의 책무가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말을 옥죄는 이런 시는 당연하게 함량 미달일 터인데 버젓이 당선작으로 새해 벽두에 신문을 장식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켜 낸 우리글 우리말을 이렇게 짓밟아도 괜찮은 일인가? 

 

구체적인 시 읽기는 생략한다. 외래어를 장치한 사례만 나열해 본다. 먼저 제목에 장치한 사례를 읽어 본다. 당선 시에서 ‘펜치’, 시조에 ‘휠체어’와 ‘스마일 점퍼’, 동시에 ‘빅뱅’, ‘페이스 페인팅’이 등장했다. 외래어 ‘펜치’를 상징이나 비유의 방법으로 다른 시어로 대체하면 시가 아닐까? ‘휠체어’를 ‘바퀴 의자’, ‘스마일 점퍼’를 ‘미소 짓는 높이뛰기 선수’ 혹은 ‘웃음꽃 높이뛰기 선수’라고 하면 시조가 아닐까? 

 

‘빅뱅’을 ‘우주 탄생의 대폭발’, ‘페이스 페인팅’을 ‘얼굴 그림’이라고 하면 동시가 아닐까?

 

한 편의 시 본문에 ‘컨베이어벨트’, ‘레디메이드 툴’, ‘로망’, ‘밸런스게임’, ‘셔츠’, ‘펜치’가 등장했다. 특히 셔츠는 두 번이나 등장했다. 총 7번 등장했다. 군데군데 자리 잡고 우리말의 숨통을 옥죄었다. ‘컨베이어’는 우리말로 ‘전송대’와 ‘반송대’이다. 둘 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이다. 

 

한 편의 동시 본문에 ‘페달’, ‘로켓’, ‘블랙홀’이 등장한다. ‘페달’을 순화한 용어는 ‘발판’이다.(행정 용어 순화 편람, 1993년 2월 12일), ‘로켓’은 ‘우주 발사체’ 혹은 ‘우주 추진체’, ‘블랙홀’은 ‘중력장의 구멍’ 혹은‘ 검은 구멍’이라고 표현하면 우리말이 더 빛날 것이다. 

 

2024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어 보면, 외래어를 배제하려는 고투의 흔적이 전혀 없다. 시인의 시적 치열성이 의심스럽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세종대왕에게 욕하는 행위이다. 이런 시가 당선작이라는 점에 많은 시인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심사한 자는 시적 가치와 의미, 메시지에 비중을 둔 듯하다. 우리말을 옥죈 글에 시라는 자격을 부여해도 무방할까?

 

시인의 책무를 망각하지 말자.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데 앞장서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3.13 10:08 수정 2024.03.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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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