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우리말의 목을 비트는 행위는 중단하자

신기용

2024년 신춘문예 운문(시, 시조, 동시) 부문 당선작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외국어와 외래어 남발이다. 우리말의 목을 비트는 행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응모한 작품이 많은 듯하다. 

 

몇 년 전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다.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의 일부를 읽어 본다.


시를 왜 써야 하는지 그 필연성마저 결여돼 사유의 얄팍함이 엿보인다. 시의 본문은 물론이고 제목에까지 외래어나 외국어를 남발하는 점은 그 필연성의 결핍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심사 위원: 문정희, 정호승 시인)

 

산문 부문 심사평에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심사평의 일부를 읽어 본다.

 

본심에 올라온 9편의 작품 가운데 단 한 편의 작품만을 제외하고는 제목이 모두 외국어(특히 영어)나 외래어로 된 것이었다. 외국어를 쓰면 안 된다거나 무조건 시류를 거부하는 게 좋다는 건 아니지만 소설의 입구이면서 문패와 같은 제목에서 외국어가 남발되면 작품의 정체성, 개성이 흐려질 염려가 있다. 쓸 이야기는 부족하고 반성 없는 발설의 충동만 느껴지는 작품은 공허하고 겉멋이 들어 보일 뿐이다. 정교하고 압축된 이야기와 강력한 구조, 경제적인 언어를 지향하는 단편소설에서는 공감대와 설득력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심사 위원: 최윤 서강대 교수, 성석제 소설가)

 

인용한 두 심사평의 핵심은 외국어와 외래어 남발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점이다. 당연한 심사평이다. 각종 문예지와 시집을 읽어 봐도, 21세기에 접어들어 시 제목과 본문에 외국어와 외래어를 채택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시단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시류에 편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전자는 모국어의 아름다움이 빛날 수 있게 언어 예술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올곧은 시인의 목소리이다. 후자는 시인의 책무와 시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가짜 시인의 목소리이다.

 

2024년 신춘문예 운문 부문 여러 당선작의 제목과 본문에 외래어를 남발한 사례는 우려를 넘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수준이다. 사유의 치열성과 고투와는 거리가 먼 얄팍한 기교만으로 도전하여 운 좋게 당선한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뽑아 올린 심사 위원의 역량과 신문사의 권위마저 의심이 간다. 권위 있던 신춘문예마저 짜가 등용문으로 전락했다. 신춘문예의 권위도 몰락의 길로 접어든 신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이라는 삼엄한 시대에도 지켜 낸 우리말 우리글, 즉 모국어가 문학 작품에서조차 버림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단에서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권위 있는 신문과 심사 위원의 안목을 믿을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그 권위는 허울뿐이다. 그들이 선정한 당선작이 증거이다.

 

진짜 시인이라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말, 죽은 우리말(死語)을 찾아내어 빛을 보게 해야 한다. 새로운 시어를 만들어 내어 우리말을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 이는 시인의 책무이다. 

 

우리말의 목을 비트는 행위는 중단함이 마땅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3.20 10:13 수정 2024.03.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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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