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꽃 한송이 꺾어 든, <삼천포 아가씨>

반야월·송운선·은방울자매

유차영

고려 왕조의 서울이던 개성(개경·송악)에서 삼천리나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지명 유래를 가진 곳이 삼천포다. 이곳 삼천포 아가씨가 부산항을 거쳐 서울로 간 낭군을 그리는 노래가 은방울자매의 목청을 타고 넘어온 <삼천포 아가씨>다.

 

이 노래는 실제 있었던 삼천포 처녀의 사랑 사연을 반야월이 노랫말로 얽고, 송운선이 곡을 붙여서 삼천리 방방곡곡의 멀어져 간 남녀 연인들 가슴팍을 멍들게 하였다.

 

1950년대 후반 삼천포를 방문했던 반야월은 친구 딸의 이러한 비련곡절(悲戀曲折)을 듣고서 노랫말을 엮는다. 이 사연을 1961년 작곡가 송운선에게 건넨다. ‘이건 실화야, 둘도 없는 내 친구의 딸 이야기거든…. 삼천포에서 약국을 하며 혼자 살아. 처녀로...’

 

비 내리는 삼천포에 / 부산 배는 떠나간다 / 어린 나를 울려놓고 / 떠나가는 내 님이여 / 이제 가면 오실 날자 / 일 년이요 이 년이요 /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 삼천포 내 고향으로 // 조개껍질 옹기종기 / 포개놓은 백사장에 / 소꿉장난 하던 시절 / 잊으셨나 님이시여 / 이 배 타면 부산 마산 / 어디든지 가련 많은 / 기다려요 네 기다려요 네 / 삼천포 아가씨는 // 꽃 한송이 꺾어 들고 / 선창가에 나와 서서 / 님을 싣고 떠난 배를 / 날마다 기다려도 / 그 배만은 오건마는 / 님은 영영 안 오시나 / 울고 가요 네 울고 가요 네 / 삼천포 아가씨는.

 

오선지에 걸쳐진 노랫말이 한 폭의 풍경화다. 부슬비 내리는 삼천포 항구가 눈에 선하다. 노래 속 화자(話者), 주인공 아가씨는 여학교를 졸업하고 삼천포에 약국을 차려놓고, 서울로 간 낭군 사랑님을 기다린다. 하지만 청년은 고시 공부를 핑계로 소식을 끊었고, 낭자는 처녀 귀신이 되었단다. 이 갯마을 처녀의 애틋한 사연이 작사의 모티브다.

 

삼천포(三千浦)는 사천시에 있는 항구다. 원래 뱃길 포구로 발전해 온 곳으로 고려 성종 때 영남 내륙·해안 지방 조세미(租稅米)를 개경으로 수송하기 위하여 통양창(通陽倉)을 설치했던 곳이다. 이곳에 사람과 물산이 집산하게 되어 삼천리라는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이나 대화가 잘 진행되다가 엉뚱하게 진행될 때,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말의 진원(眞源)은 세 가지다.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진해 해군기지가 생긴 후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장병이 도중에 삼랑진에서 진해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삼천포행 기차를 탄 사연이다. 또 하나는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 승객이 삼천포행 객차를 분리하는 개양역(開陽驛)에서 삼천포행 차량을 타고 간 경우다.

 

방송윤리위원회는 1977년 이 표현을 비속어·은어로 규정하여 방송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제는 귓속을 달달하게 얼려주는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삼천포 아가씨>를 열창한 은방울자매는 1962년 결성한 박애경과 김향미 여성 듀엣이다. 둘 다 고향이 밀양이다. 밀양은 박시춘의 고향이기도 하고, 조용필의 <허공>을 작사 작곡한 정욱(정풍송)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정풍송의 대중가요계 첫 출발은 가수였다.

 

박애경은 1956년 <한 많은 아리랑>으로, 김향미는 1959년 백영호의 <기타의 슬픔>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쇼 무대에서 콤비로 부른 노래가 좋은 반응을 얻자, 듀엣을 결성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김시스터즈와 이시스터즈, 김치캣, 정시스터즈 등 걸그룹이 있었으나, 트로트풍 걸그룹은 은방울자매가 처음이었다. 1989년에 김향미 대신 오숙남이 합류했다. 이름은 은방울꽃에서 따왔다.

 

이 꽃을 서양에서는 성모마리아꽃이라고 하며, 청아함의 상징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요정의 놀이터였다고 하여, 요정의 사닥다리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영란화, 속칭으로는 색시꽃이라 하였다. 금사향이 부른 노래 <홍콩아가씨> 속의 화자가 손에 들고 파는 꽃도 이 꽃이다.

 

고종 황제의 순헌황귀비가 된 엄상궁의 후원으로 설립한, 숙명여고의 교화(校花)도 영란화다. 이 학교의 전신이 명신여학교였다. 순헌황귀비와 그녀의 친정 엄씨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을 가져, 숙명여학교 외에 양정의숙과 진명여학교도 세웠다. 진명여학교는 진명여고의 전신이다. 진명여고의 교화는 패랭이꽃이다.

 

2003년 사천시와 남해군 창선도를 잇는 창선삼천포대교가 완공되었다. 이때 사천시에서는 삼천포대교공원에 <삼천포아가씨>노래비를 건립하고, 서금동 노산공원 바닷가에는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는 삼천포아가씨를 형상화한 소녀상을 세웠다.

 

2011년 삼천포항 개항 100주년 기념으로 삼천포아가씨가요제를 개최했다. 이후 매년 개최하는데, 첫 회 심사위원으로는 삼천포아가씨의 작곡가 송운선이 참석하였고, 은방울자매가 초대되었다.

 

사천시 대방동 251번지, 바다 기슭에 대방진굴항(大芳鎭掘港)이 있다. 6백여 평 되는 인공항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군항 시설로 경남문화재 제93호. 이곳은 당시 우리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 진영이 있던 곳.

 

그 뒤 구라량이 폐쇄되어 쇠퇴했던 것을 순조 임금 때 진주병마절도사가 창선도와 적량첨사와의 군사 연락을 위해, 둑을 쌓아 굴항을 다시 만든다. 당시에는 300여 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병선(兵船)의 정박지로 삼고 왜구를 방어하였단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은거해 두었던 곳이다. 장군은 이 이곳에 거북선을 숨겨 두고 선체에 바다 굴(석화, 石花)이 달라붙지 않도록 굴항의 물을 민물로 채웠단다. 지금은 호암석축(護岩石築)을 쌓고 주위를 정화하여 선착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천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거북선을 출격시켜 승리를 거둔 곳. 1592년 5월 29일의 전투다. 이 거북선은 1597년 7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전에서 격침되었다.

 

최초의 거북선 돌격장은 이언량. 임진왜란에 출전한 거북선은 본영귀선·순천귀선·방답귀선 등 3척이었고, 귀선돌격장은 사천해전 이언량, 한산대첩 좌귀선 이기남·우귀선 박이량, 방답귀선장은 신여량이었다.

 

작곡가 송운선은 법대를 졸업했지만 작곡예술인으로 살았다. 그는 <쌍고동 우는 항구>,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 사람>, <영산강 처녀>, <하동포구 아가씨> 등 히트곡을 남겼다. 이 노래는 1966년 영화 <삼천포 아가씨>로 환생한다. 강찬우 감독, 황정순·신성일·김승호·양훈이 열연했던 영화다.

 

유행가는 역사 속의 보물이다. 이러한 유행가가 2024년 신가고요(新歌古謠) 열풍으로 펄럭거리고 있다. 새 가수가 옛 노래를 부르는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의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고사성어가 이처럼 적확(的確)하게, 옛 노래 새 가수로 맞아떨어질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한국 유행가 100년사 최초의 유행가스토리텔러 활초의 예단(豫斷) 이외에.

 

흘러온(흘러간) 옛 노래의 탄생 시기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과 그 시대의 마디에 얽혀 있는 역사 속의 사연, 즉 《역사+노래+사람》을 아우르는, 《유행가와 역사 앙상블》스토리텔링이 이렇게 절묘하게 신가고요(新歌古謠)로 깃발을 날릴 날은 아직도 멀고 길다.

 

신세대 가수가 옛노래를 부르는, 유행가의 유행화 시대의 면면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예단이다.

 

이제, 이러한 노래-트로트라고 불리는 출처와 탄생 모멘텀이 불분명한 용어-를 아랑가(我浪歌)라고 통칭할 일만 숙제로 남았다. 아랑가는 우리 고유의 정통노래 아리랑(我理朗)과 가요(歌謠)를 합친 융복합 단어·용어이다.

 

아랑가는 우리의 가장 고유한 노래 장르 명칭이며, 지극히 글로벌한 한국적인 컨셉으로 유구하게 빛나리라. 아랑아랑 아랑가여~ 어서 빨리 아랑~ 아랑하시라. K-팝과 K-컬쳐 열풍을 타고~.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3.21 10:28 수정 2024.03.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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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