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늑대를 찾아서

고석근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저절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머리말』에서

 

 

마크 롤랜즈가 지은 ‘철학자와 늑대’는 철학자와 늑대의 아름다운 11년간의 동거 일기다.​ ​‘새끼 늑대 팝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스물일곱 살 철학 교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깊은 내면에서 ‘늑대’가 깨어난 것이다.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인간 세상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야성(野性), 신성(神性)’이다. 그는 토끼 사냥을 하는 늑대를 관찰한다.

 

‘근육을 긴장시켜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한 채 주둥이와 앞발은 토끼에게 향한 늑대. 15분이 지나도 토끼의 움직임만 바라보며 숨죽이고 기다린다. 토끼를 잡고 못 잡는 건 그다음 문제. 토끼라는 실체만 쫓을 뿐이다.’

 

우리는 ‘이 시간’을 잃어버렸다. 찰나가 영원인 시간.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장으로 들어간 몸. 물질이면서 에너지인 몸, 늑대는 이런 몸으로 살아간다. 인간은 오랜 수련 끝에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극히 소수의 인간만이. 우리가 아는 성현(聖賢)들이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일생에 몇 번이나 이런 시간을 경험할까? 나머지 대다수의 인생은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의 물결 위에 둥둥 떠 가는 티끌일 뿐이다. 

 

늑대는 늘 니체가 말하는 ‘영원 회귀’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언제나 위로 분수처럼 폭발하는 시간이다. 이 ‘완전한 순간’을 놓쳐버린 인간은 우울과 권태에 진저리를 친다. 무언가 신기하고 즐거운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  

 

삶의 충만함을 잃어버린 인간은 다른 인간,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면서 존재감을 느끼려 한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척하려 개처럼 돈을 번다. 하지만 개처럼 번 돈은 절대로 정승처럼 쓸 수 없다.

 

어쩌다 인간이 늑대만도 못하게 되었을까? 수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원시인들은 늑대 같은 야수들과 더불어 잘 살았다. 그들을 신으로 섬기며 그들과 가족이 되어 살았다. 자신들이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망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 농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점차 자신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기 시작했다. 문명의 힘으로 제압한 야수들을 우리에 가두고 그들을 야유했다. 인간 안의 야수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야수를 가축으로 길들이며 자신들도 가축이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애완견’이 되었다.

 

니체는 최고의 인간으로 아이를 든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저절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아이의 내면에는 늑대가 살아있다. 그들은 ‘완전한 순간’을 누린다. 그들은 과거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하나의 선 위에 있지 않다. 아이에게 시간은 늑대처럼 ‘순간의 연속’이다. 문명화된 인간은 ‘생각’이 만들어 낸 온갖 망상 속에서 살아간다.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박수를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 여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부분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찾는다.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바쁘게 살아간다. 그들은 흡사 꼭두각시 같다.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늘 깔깔거린다. 그들은 웃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시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찾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러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자신 안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3.21 11:01 수정 2024.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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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