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석 칼럼] 이순신은 전란 중에도 인(仁)의 덕목을 실현했다

왕실 재건과 민생 안정의 노력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 이순신은 옥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을 치르고 한겨울을 맞아 그간 치른 전쟁을 회상하였다. 옥포에서 첫승리를 거둔 것이 승전의 발판이 되었고, 사천해전에서 귀선을 출동시켜 왜선을 유인하여 분멸시켰으며, 목동 김천손의 왜선 정보를 듣고 한산의 견내량에 출동하여 학익진으로 왜선을 분멸하고, 부산포에서 왜선 백여 척을 분멸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전쟁 중에 이순신은 특히 전선의 병력 충원과 내륙의 성곽 수호 문제도 함께 고려하여 공격과 방어에 주력했다. 이순신은 이때 “이 방법을 사용하여 5번 적에게 나아가고 14번 승전하였다”고 자평하였다. 일본군의 내륙 진입 차단과 함께 국가의 심장부를 수호하기 위해 무엇보다 해상 변방의 방어 문제가 중요하게 인식된 것이다. 

 

해상에서는 조선 수군의 연승 소식이 있었던 반면, 내륙은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 그때 이순신은 한겨울의 추운 때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일본군을 소탕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실제 그 당시 일본군은 조선보다 따뜻한 해중지역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조선의 겨울 생활이 익숙지 않아서 추위에 매우 괴로워하였다. 그러한 내용은 아래의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해중(海中)지역에 있어서 비록 추운 겨울을 만나도 바람이 오히려 따뜻하여 장정들은 오직 짧은 소매 옷만 걸치고 긴 옷에 겹주름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이제 흉적들이 오랫동안 남의 땅에 머물러 있으면서 풍토에 익숙지 않아 한겨울 추위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내기 어려워할 뿐 아니라, 군량이 이미 다하여 기력도 또한 다하였으니, 이 기회를 틈타 급히 공격하여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왕실을 재건하는 일이 바로 이때에 달려 있습니다. 

-임진년 8월 28일 이후 별록,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이 글을 통해 임진년 세밑에 이순신은 일본군이 추위와 기근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하루속히 일본군을 소탕하여 왕실을 재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맘대로 되지 않았고, 그후 승전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이순신은 신하로서 북쪽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며 통곡하였다.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남달랐다. 조정에서는 전쟁으로 유랑하는 군사와 백성들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순신은 무고한 백성을 곤경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급선무로 여겼다.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제공문화재청 현충사 사진불허복제

 

백성을 곤경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급한 일입니다. 큰 적이 각 도에 가득하여 무고한 백성들은 몇 십만 명인지 알 수 없으나 모두 그 해독을 입었습니다. 종묘사직과 도성도 보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노라면 애통함이 불에 타고 칼에 베이는 듯합니다. 

-임진년 8월 28일 이후 별록,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나라의 위급존망지추 상황에서 이순신은 민생안정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병력이 부족하여 전쟁에 어려움이 따랐고, 백성은 피해가 심하여 군역을 징집하는데도 문제가 있었다. 이에 이순신은 이런 상황을 체찰사에게 보고한 결과, 먼저 백성을 안정시키고 적을 방어하는 데 더욱 주력할 수 있었다. 

 

역대의 역사를 보면, 명장들도 항상 유학의 최고 덕목인 인(仁)의 정신을 중요시하였다. 이순신이 백성을 긍민히 여긴 것도 인(仁)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仁)이란 인간 사랑의 기본정신으로서 상대에 대한 동정심과 배려심에서 시작한다. 중국 춘추시대 병법가 오기(吳起)는 “인(仁)으로 어루만져야 한다[撫之以仁].”고 하였고, 진말(秦末)의 병법가 황석공(黃石公)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발로이다[惻隱之心, 仁之發也].”라고 하였다.  

 

지휘자가 진정 인(仁)의 마음, 즉 인간 사랑의 정신을 안다면, 민생을 올바로 안정시키고 군사들도 사기진작할 수 있어 국방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최고 병법가 손무는 “용병술을 아는 장수는 백성의 운명을 책임지고 국가의 안위에 주도자가 된다[知兵之將, 民之司命, 國家安危之主也].”고 하였다(『손자』「작전」). 지략이 탁월한 장수는 백성을 잘 보살피고, 국운도 관장할 수 있다. 때문에 이순신은 작전 지휘관으로서 민정(民政)도 살피며 목민관의 역할을 다하여 인(仁)의 덕을 실현할 수 있었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저서 ‘교감완역 난중일기’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 자문위원

이메일 skku1001@naver.com

 

작성 2024.03.25 06:19 수정 2024.03.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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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