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문인은 아무나 하나

신기용

시인이나 소설가가 ‘이름 모를 꽃’, ‘~ 모습이다.’, ‘~ 생각한다.’라고 표현한다면 정상적인 표현일까? 이는 구체적인 묘사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나아가 문인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아래와 같이 강조해 왔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자연과 사물의 이름을 알든 모르든 그것을 형상화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과업을 수행해야 마땅하다. 그 과업을 포기하고 “이름 모를 꽃, 새, 곤충”이라는 가치 없는 표현을 작품에 삽입한다면, 스스로 시인이나 소설가이기를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완성도를 향한 고투와 치열성이 부족한 결과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에서 강조한 내용을 더 읽어 본다. 문인이라면 뼈에 새겨 넣어야 할 이야기이다. 심지어 핏물과 뼛물에 녹여 넣어야 한다.

 

어떤 소설가가 작품에 이렇게 썼다.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그의 스승은 버럭 화를 냈다.

 

“이름 모를 꽃이 세상에 어디 있어? 네가 그 꽃의 이름을 모른 것이지. 그 꽃에 왜 이름이 없어! 이따위로 소설을 쓰려면 당장에 집어치워.”

 

정신이 번쩍 든 그 소설가는 그다음부터는 식물도감을 사 가지고 꽃과 나무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뒤로 그 소설가의 소설 속에 ‘이름 모를 꽃’ 같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가을이면 가을에 피는 꽃을 찾아 글을 묘사했다.

 

꽃을 비롯한 사물의 이름을 알면 더 좋지만, 모르더라도 이를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 즉 묘사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만일 ‘~ 모습이다.’, ‘~ 생각한다.’라고 표현했다면 구체적인 묘사를 포기한 행위이다. 스스로 짜가 시인임을 폭로하는 행위이다.

 

또한, ‘슬픈 모습’, ‘기쁜 생각’이라는 표현은 ‘슬프다, 기쁘다’라는 직접 정서도 문제이지만, ‘모습’과 ‘생각’이라는 뜬금없는 말의 결합으로 인해 시적 표현과는 거리가 먼 산문에 불과하다. 산문을 그냥 행갈이 한다고 해서 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모습’과 ‘생각’을 그림 그리듯 간접 정서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또한, 막연하게 생각이라 표현하기보다 신념화 혹은 이념화하거나 이상화하여 표현해야 한다. 

 

문인을 아무나 하나? 문인의 길은 험난하다. 열심히 정진하여 진정한 문인으로 거듭나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3.27 06:21 수정 2024.03.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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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