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시란 무엇인가

고석근

진정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렵혀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인간은 먼저 바다이어야 한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위버멘쉬)을 가르치노라. 초인이 바로 그 바다다. 그대들의 커다란 경멸이 그 속에 가라앉을 수 있는 바다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공부 모임에서 시(詩)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항상 격론이 벌어진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반발이 나온다. 

 

 “왜 시에서 우열을 가리나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나는 자라면서 중학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전혀 시를 읽지 않았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아마 사막 같은 내 마음이 간절히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다 시 강좌에 가게 된 것이리라.

 

다 큰 어른들이 조그만 강의실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시 강의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그런데, 강사가 좋은 시라고 열변을 토하는 시들이 전혀 나의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 같은 시어들뿐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ㄱ 시인의 말이 들려왔다. “좋은 시를 필사하세요. 노트가 허리에 닿을 때까지 필사하세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점과 도서관에 갔다. 시집이나 문예지를 펴들고 읽어내려가다 마음에 드는 시를 노트에 옮겨적었다. 시를 필사한 노트들이 꽤 두툼하게 쌓일 때, 시를 낭송하며 녹음했다. 녹음한 시들을 수시로 들었다.

 

어느 날 눈이 열리고 귀가 뚫리게 되었다. 좋은 시와 나쁜 시가 선명하게 구별이 되었다. 좋은 시를 읽으면, 온몸에 전율이 왔다. 몸이 좋은 시를 알아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시(詩)적 체험’을 한 듯했다.

 

오랫동안 감정을 깊이깊이 억누르며 살아온 나, 꽁꽁 얼어붙은 나의 마음이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자유(自由)라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물처럼 흐르는 마음, 바다가 될 때까지 흘러가리라. 

 

우리는 항상 “나는 누구인가?” 하고 질문을 한다. 그런 질문을 하며 ‘나’를 만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시를 공부하기 전에는, 나는 고정불변한 나였다. 남자, 남편, 장남, 교사.......

 

나는 오랫동안 그런 고정불변한 나에 맞춰 살아왔다. 이 고정불변한 나는 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좋은 시가 주는 파동에 나의 마음이 접속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에너지는 같은 파동끼리 만난다. 

 

이런 얼어붙은 마음이 좋아하는 시는 좋은 파동을 지니지 못한 ‘감상(感傷)적인 시들’이다. 시는 얼어붙은 마음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게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가 되어야 한다. 어떤 더러움도 다 받아들이면서도 더럽혀지지 않는 바다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니체가 말하는 초인(위버멘쉬)이 되어야 한다. 시는 우리를 초인으로 안내하는 여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파블로 네루다, <시(詩)> 부분  

 

 

 시인은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이 미소(微小)한 존재’가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3.28 06:42 수정 2024.03.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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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