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어쩌다 이 지경까지

곽흥렬

이혼이 무슨 남의 집 강아지 이름쯤이라도 되는가. 사람들은 입만 뻥긋했다 하면 ‘이혼’이라는, 그다지 유쾌하달 것 없는 이 말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들먹인다. 특히 젊은 여자들 서넛이 모이는 장소에서면 스스럼없이 어느 누군가의 이혼 이야기가 화젯거리에 오르고, 아침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TV 일일연속극이란 것들이 온통 이혼 소재 하나로 도배되다시피 하다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닐 성싶다. 이혼, 이 말은 이처럼 요즘 들어 가장 인구에 회자하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바야흐로 세계적인 이혼율 최상위 국가의 불명예스러운 반열에 올랐다는 썩 유쾌하지 못한 기사記事를 본다. 그것도 자그마치 버금 자리까지나. 이 보도가 정녕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지구촌에 우리의 부끄러움 하나를 새로이 보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놀라움 혹은 충격의 차원을 넘어 차라리 아득한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여태껏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자처해 온 우리가 어느새 이혼의 천국인 미국에 챔피언 자리를 넘보게 되었다니……. ‘희망’이란 낱말이, 허물어진 벽체 사이로 바람처럼 빠져나간 듯 텅 빈 공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겠다.

 

우리는 서구화라는 전 지구적인 힘 쏠림 현상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젖어 들어가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의학 기술이 진보하고, 그에 따라 생활 형편이 윤택해지고 하는 긍정적인 방면에 있어서의 서구화라면 오죽 바람직하고 즐거운 일일 것인가.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서구식 삶의 폐해는 우리를 서서히, 그러면서도 심각하게 벼랑 쪽으로 내몬다.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까맣게 몰려와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무작정 뛰어드는 쥐 떼처럼, 그곳이 파멸의 구렁텅이인 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떼죽음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낭만적인 환상에 들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모르기 때문에 방비조차 할 수 없는 처참한 비극의 종말,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러한 나락奈落으로 치닫고 있지나 않은지 심히 우려의 마음을 갖게 한다. 

 

광기와도 같은 이즈음의 이혼 풍조는 유교적 가치체계의 급속한 해체가 가져온 심각한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가부장적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남성들의 권위 의식과 더 이상 구시대의 낡은 가치체계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페미니즘적 관념으로 무장한 여성들의 몸부림, 이 두 가치의 충돌은 전통적인 도덕률에 바탕을 두었던 가정의 울타리 무너짐을 필연적으로 예고한다. 

 

설사 남성들의 가치관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손 치더라도 여성들의 그 변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가치 지체 현상으로 인해, 오늘의 심각한 이혼 풍조를 잠재우는 데 그게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결국 고삐 풀린 망아지요 브레이크 걸리지 않는 기관차처럼, 파국의 수레바퀴는 제지가 어려운 양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급격한 이혼율 상승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아닐까. 

 

게다가 매스컴들도 문제라면 문제다. TV 드라마 같은 데서 이혼이 활개치고 있는 오늘의 시대 현실을 최대한 충실히 반영하려 한 당초의 의도가 변질되어, 이혼이 마치 무슨 기리고 권장할 만한 도덕률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가치관의 오도誤導 현상을 부추겨왔다는 데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부인하려 들지 못할 것이다.

 

바람직한 부부 사이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항상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두 가닥의 타줄 같은 것. 너무 팽팽하면 엿가락처럼 뚝 끊어지고 말 것이며, 너무 느슨하면 실타래처럼 풀어져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기가 십상이다. 깨가 쏟아질 듯 알콩달콩 자기들의 사랑 온도를 한껏 과시하다가도, 어느 순간 느닷없이 사기그릇같이 깨어지고 마는 세칭 ‘잉꼬부부’를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본다. 지나치게 스스럼없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채 자신들 사이에서 커 가고 있던 불행의 불씨를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 아닐까.

 

건강한 부부 사이를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무기는 유행가 가사 속의 값싼 사랑 타령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촛불 같은 희생과 헌신이며, 그리고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처럼 느리고 긴 기다림이다. 서로 말없이 마주 보고 서서 눈빛으로 아끼고 감싸주는 마음, 이러한 마음의 기초 위에 세운 사랑의 탑은 여간한 바깥바람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아니하리라. 

 

참된 사랑, 그 지고至高한 의미를 이 순간에 다시금 생각한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4.01 10:47 수정 2024.04.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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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