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통영항의 봄

김태식

내 고향 통영에도 봄이 닿아 적당하게 갯내음을 버무리고 있었고 새벽 시장에는 뽈래기가 파닥파닥거리고 있다. 뽈래기에 왕소금 뿌리니 살점이 오들오들 쫄깃해지고 진간장 마늘 다져 은빛나는 갈치구이 찍으니, 혀끝에 호강스런 소동이 났다. 

 

나무젓가락으로 헤집던 포장마차 꼼장어 구이집 강구안에서 사라졌지만 노릇노릇 추억은 익어가고 있었다. 언덕배기에서 통영을 지탱하고 있는 동피랑 마을을 찾았다. 

 

동피랑 마을은 하늘이 닿을 듯 가까워진 둥지 윤슬로 빛나는 통영 바다가 손에 잡힐 듯 자리 잡은 곳 세월을 빨아들인 슬레이트 지붕들은 단단한 근육질이 되어 있고 노파는 오늘의 운세라도 보는지 화투패를 뜨다가 빼때기죽 손님 방문에 벌떡 일어나시며 한 그릇 주문에 고마워하신다. 

 

앵구는 주인 옆에서 두 다리를 쭉 펴고 늘어져 있고 발길 닿는 골목 벽마다 통영의 풍물들이 통영자수처럼 박혀 있다. 동피랑 마을은 사계절을 또렷이 기억하며 추억을 소환한다. 별마저 얼어버린 한겨울 그믐밤에도 지는 해 그림자도 쉬었다 가는 하늘이 가까운 곳,

 

흑백을 배경으로 꽃을 피웠던 봄날의 하늘 짓궂은 꽃샘추위 바람을 피해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들 씻어 만개한 들꽃들이 피어 있다. 엷은 바람 코끝을 스치는 여름날에 여우비 내리면 오목한 슬레이트 지붕 따라 다림질하듯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신비한 샘을 만들어 방긋 미소를 짓는 곳, 

 

해지고 어두운 밤 오면 전깃불은 졸고 지나간 세월 엮임의 흔적을 찾아 주는 동피랑 마을 그곳에는 통영의 화석이 숨 쉬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중앙시장은 통영의 심장처럼 맥박을 두드리고 있다. 갈매기 울음소리 박자에 맞춰 춤추는 싱싱한 생선이 도마를 떠나면 하얀 살이 한 접시 만들어진다.

 

갯내음 향기 짙은 강구안 해안도로를 몇 조각 베어 무늬 횟집 아주머니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입속으로 들어온다. 고깃배가 일과를 마치고 밧줄을 묶을 때 익은 별이 탐스러운 중앙시장 갯가에서 오늘 하루 더 편안하게 쉬어 갈까. 해안도로를 기쁨 젖은 아쉬움으로 걸어 볼까. 

 

머물렀던 그리움을 파도가 배웅하니 수평선을 쓰다듬고 싶다. 뽀르륵 뽀르륵 갯벌 파는 도둑게 발길질에 입술이 부르튼 바다, 바다의 정적을 밀물과 썰물에 맡기는 것은 어떠리. 남망산공원에서 노을을 지켜보는 것까지도….

 

통영은 바다를 품은 아늑한 나의 운명적 고향이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4.02 11:27 수정 2024.04.02 12:51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