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애인

이순영

애인!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애인 하나 두고 살면 정말 살맛 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건 애인 있는 사람이라고 모두 이구동성이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시 노래 등 모든 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애인이라는 주제로 대서사가 펼쳐진다. ‘애인 있어요’라는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노래방을 쾅쾅 울린다.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가슴까지 절절해 온다. 속절없고 고통스럽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 그것이 애인이다. 부인과 애인은 양립할 수 없다. 부인이 지옥이라면 애인은 천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국을 찾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영혼의 바깥을 떠도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원히 변치 않고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줄 애인이 있다고 하니 ‘유레카’를 외치며 좋아 죽는다. 그 애인을 붙잡기 위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륜이라는 딱지쯤이야 감수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영원한 애인을 붙잡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하지만 이 애인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문제를 통과해야 한다. 백 가지라도 통과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시험지를 딱 받아보고 나서는 팍 기가 죽고 만다. 이 여섯 가지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 봐선 누구나 다 시험에 통과할 것 같지만, 이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지구에서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춘원 이광수도 이 여섯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애인’이라는 시까지 지었는데 풀었는지는 모르겠다.

 

임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布施)를 배왔노라

임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持戒)를 배왔노라

임이 주시는 것이면
따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왔노라

천하 하고많은 사람에 오직
임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禪定)을 배왔노라

자나 깨나 쉬일새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精進)을 배왔노라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때에 나는 살바야(智慧)를 배왔노라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라고
짐짓 愛人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

 

영원히 내 곁에 둘 수 있는 애인을 차지하기 위한 여섯 가지 문항의 시험지를 들고 어떤 사람은 너무 쉬워서 코웃음을 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어려워서 한숨을 쉴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마음이나 물질이나 조건 없이 기꺼이 주어야 하고 둘째, 계율을 잘 지켜 선을 실천해야 하며 셋째, 박해나 곤욕을 참고 용서해야 하고 넷째, 무슨 일이든 꾸준히 용기 있게 노력해야 하며 다섯째, 마음을 늘 고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여섯째, 이치를 밝게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 여섯 가지 문항의 쉽고도 어려운 문제를 당신이라면 다 풀고 실천해서 애인을 차지할 수 있을까. 

 

189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춘원은 청일전쟁을 겪었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 오산학교 교사 시절에 경술국치를 겪었다. 그리고 시베리아를 방랑하던 시절에 1차 세계대전 소식을 듣고 북경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춘원이 교류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홍명희, 최남선, 안창호, 최남선, 주요한, 신익희, 윤보선, 여운형 등 살아있는 역사의 주인공들과 시대를 같이했다. 중매로 만난 본부인 백혜순과 이혼하자 조강지처를 버린 나쁜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붙자, 춘원은 결혼할 자유가 있으면 이혼할 자유도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주옥같은 작품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에 빛이 되어주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사흘 전 고혈압과 폐렴으로 쓰러지자,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이광수의 효자동 집을 압류했다. 그리고 강제로 김규식, 김동원, 안재홍, 방응모, 정인보 등과 함께 납북되었다. 평양에서 강계로 이동되던 도중 지병인 폐결핵에 동상까지 겹쳐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친구 홍명희가 김일성의 허락을 얻어 인민군 병원으로 옮겼지만, 1950년 10월 25일 폐결핵으로 승용차 안에서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춘원의 시신은 오랜 친구인 홍명희, 안재홍, 김원봉 등에 의해 장례식을 치르고 강계군 만포면 야산에 안장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박종화, 이희승, 최현배, 최남선 등에 의해 복권운동이 시작되었다. 천재로 태어나 친일로 마감한 춘원의 인생은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금쯤 춘원은 짐짓 애인의 몸으로 나투신 부처를 만나고 있을까.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라고
짐짓 愛人의 몸을 나툰 부처시라고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4.04 09:40 수정 2024.04.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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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