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무상함의 지혜, 모든 것은 변한다

홍영수

완연한 봄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관리사무소 앞 목련이 하얀 미소를 지으며 윙크한다. 며칠 지나면 커다란 꽃잎이 떨어질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풍경 속에 어느 날 우연히 떨어져서 흩어져 있는 목련 꽃잎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낙화한 꽃잎을 보면서 혹한의 겨울엔 옷을 벗고 있다가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인 봄에 꽃을 피웠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잎들을 떨구며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 앞에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은 한순간, 어느 시기, 어떤 계절에도 변하고 변화하고 있다. 연둣빛으로, 초록빛으로, 붉고 노란 색깔들로 피고, 물들고, 떨어지며 사라진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확고한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무상함 앞에서 역설적으로 변치 않는 것을 찾고 있다. 항상 됨이 없고, 불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늙마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인생 덧없다’라는 말이다. 나이 듦에서 오는 변화를 겪고 느낄 때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무상함은 ‘니힐리즘’, ‘덧없음’ 등으로 쓰인다. 어느 해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거돈사지’라는 폐사지를 찾았다. 그곳에서 수령이 천 년 되었다는 느티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느티나무가 석축의 돌들을 하나하나 감싸 안으면서 천년의 세월을 버텨 온 것이다. 불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돌을 안고 천 년의 변화를 불러온 폐사지인 ‘거돈사지’에서 ‘무상’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같은 모습을 만났을 때 다시 한번 거돈사지의 떠올렸던‘무상無常’을 생각했다. 

 

목련꽃을 다시 보자. 그토록 같은 얼굴로 활짝 웃었던 꽃이 때가 되어 낙화한 꽃잎을 보니 결코, 같은 꽃잎이 아닌 모두 다른 형상이고 색상마저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순간, 그토록 같은 꽃이고, 같은 꽃잎이라고 해서 목련꽃, 목련 꽃잎이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알고 보니 각자 다른 모습이었다. 이처럼 변화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시대의 학자인 플리니우스의 저서 <박물지博物誌>에서 “똑같은 두 장의 나뭇잎은 없다.” 했다. 그렇다. 쌍둥이일지라도 똑같게 보일 뿐, 실제로는 모습도, 피부도, 모발도 다르다. 이같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느티나무의 같은 잎이나, 목련의 같은 꽃잎을 우리는 같은, 즉 동일한 나뭇잎과 꽃잎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다.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동일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베란다 창문을 열 때 나의 모습과 창문을 닫는 순간의 나의 모습은 다르다. 즉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세포가 줄어들 수 있고, 피부 또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기에 지금의 이름 또한 다른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꽃잎도 나뭇잎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집에 키우는 반려견의 모습도 순간순간 변한다. 그렇지만 그 변하는 모습을 구별하지 않기에 평소의 반려견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은 무상, 즉 변화에서 오는 차이를 지우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이를 지우지 못하면 퇴근해서 오는 남편의 얼굴을 아내는 낯설게 보면서 모르는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무상’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것이고 변한다는 것은 동일성이 아닌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무상’은 불교에서 현상계를 시간적 흐름으로 파악한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영원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생과 멸이 무상한 것이다.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다. 이것이 붓다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는 것이다

 

자연이나 우주의 존재, 우리들의 행위나 생각 등의 존재는 연기법에 의해 인연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항상恒常 하지 못하기에 고정불변의 독립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어느 조건에 의해 발생하게 되면 영원할 수 없고, 조건이 해체되면 실체 또한 사라진다. 원인 없이 독립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일은 결코 없다. 

 

사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무상함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무상함을 아는 한 권력과 명예, 재물 등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하기에 소유욕에 집착하지 말고 탐욕을 버려야 한다. 단 한 번 주어진 귀중한 생명을 방일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끝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게 ‘무상無常’이 주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4.04.08 01:59 수정 2024.04.0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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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