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엄마 걱정

이순영

존재를 벗어나는 일이란 죽음보다 쉬운 일이다. 헤겔은 동물을 비웃으며 자신의 존재를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고 다른 동물에 의해 죽음으로 벗어난다고 했지만, 인간의 성녀인 엄마는 존재를 벗어나고자 만신창이가 되어도 존재를 벗어날 수 없다. 자식 때문이다. 자유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존재의 집을 깨부술 수 있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만신창이가 되어도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고 엄마는 땅을 파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엄마는 피조물보다 약하지만 엄마는 신보다 위대하다. 엄마니까.

 

그런 엄마들이 변했다. 욕심 덩어리로 변했고 사치 덩어리로 변했고 인권 덩어리로 변했다. 엄마들은 엄마보다 인간이 먼저라고 선언한다. 세상이 바뀌니 엄마들도 바뀌었다. 당연하다. 엄마도 인간이고 엄마도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참지 않는다. 맛있는 것도 내 입이 우선이고 좋은 옷도 내가 먼저 입어야 직성이 풀린다. 에펠탑 앞에 서서 사진을 찍어 자랑해야 하고 늦은 유학도 망설임 없이 떠난다. 물론 속 썩이는 남편이 있다면 과감하게 갈라서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용감해진 엄마들, 자아를 찾아 나서는 엄마들, 내 인생은 내 것임을 선포하는 엄마들이다.

 

그런데 ‘엄마 생각’이라는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 멀리 떠나간 엄마가 그리워진다. 가끔 길 잃은 고양이를 보면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갈지 하는 측은지심이 일어난다. 엄마에게 기대야 안심되고 엄마에게 이야기해야 사라지는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고양이는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엄마는 세상의 모든 측은지심의 종착역이다. 엄마는 존재의 문을 여는 문고리다. 엄마는 죽지 말고 그냥 그대로 있어야 안심되는 존재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죽기 살기로 자식을 돌보니까 눈물이 난다. 지구에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엄마의 자식 사랑 때문일 것이다. 유전자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은 오늘도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열무 삼십 단이라는 무게를 생각해 보았다. 나무작대기보다 작고 약한 엄마에게 열무 삼십 단은 얼마나 가혹한 무게인가. 가혹하다 못해 처절한 무게다. 열무 삼십 단을 만들기 위해 씨를 뿌리고 종종걸음으로 얼마나 많이 밭을 오갔을까. 열무 삼십 단은 그냥 열무가 아니다. 엄마의 고통이고 눈물이고 또 희망이다. 그 열무를 머리에 이고 십 리 길을 걸어 시장에 간다. 시장 모퉁이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열무 사세요’를 목이 쉬도록 외쳤을 것이다. 아직도 줄지 않은 열무를 바라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자식이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장에 팔러 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기형도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숙제를 해도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엄마와 기형도 사이에 가로 놓여 있던 열무 삼십 단은 그렇게 청춘이 되고 삶이 되고 시가 되었다. 엄마의 열무 삼십 단과 어린 기형도의 기다림은 자기 존재를 넘어 하나의 동일성으로 귀결된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처절하면서 존귀하다. 엄혹한 시간을 살아내서 그렇고 그 엄혹함으로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서 그렇다. 엄마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고 기형도는 시로 다시 태어난다.

 

이 외롭고 쓸쓸했던 기형도는 1960년 태어나 가난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공장을 다니던 누나가 사망하자 마음의 큰 상처를 안게 된다. 기형도는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음에 깊이 새겨진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과 일찍 죽은 아버지와 그리고 공장 다니던 누나의 사망은 기형도 문학의 태반이 되었다. 문학만이 구원이라고 생각했을까. 기형도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된다. 그리고 졸업 전에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기 시작한다.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시인 기형도는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에 있는 파고다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보다가 뇌졸중으로 죽고 만다. 기형도는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한다. 젊은 기자이자 시인인 기형도의 삶은 그렇게 문득 멈췄지만 그의 글들은 오히려 살아나서 팔딱팔딱 숨 쉬며 생명의 환희를 느끼고 있다. 그는 하필 시인이 되어 삶의 언저리를 떠돌며 열무 삼십 단 이고 시장에 팔러 간 어머니를 그리워했을까. ‘엄마 생각’을 하는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의 눈물을 퍼 올리게 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엄마 생각에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4.11 01:32 수정 2024.04.1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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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