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선거이의 신상과 울산성전투 참전 여부

윤헌식

선거이(宣居怡)는 충무공 이순신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587년 조산만호 이순신이 북방의 녹둔도에서 여진족을 막아 군공을 세울 때 선거이도 함께 활약했다는 사실 또한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선종한(宣宗漢, 1762년~1843년)이 편찬한 『보성선씨오세충의록』이라는 책에는 선거이의 생년은 1550년, 자(字)는 사신(思愼)으로 기록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도 이 책의 기록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579년 치러진 과거의 합격자 명단인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이 공개되면서, 선거이의 생년이 1545년이고, 자는 이중(怡仲)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선거이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의 생년이 1545년이나 1550년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후대 사료인 『보성선씨오세충의록』보다는 당대 사료인 『기묘문무과방목』의 기록이 옳을 것이다. 단, 그의 자(字)가 사신(思愼)이라는 기록은 아직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름을 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字) 또한 개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또한 생년이 1545년으로서 선거이와 동갑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순신과 선거이의 친분이 두터워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선거이가 이순신과 북방에서 활약했음을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사료로는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라는 그림이 있다. 이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李鎰, 1538~1601)이 1588년 1월 15일에 함경북도 경흥(慶興) 인근 여진족의 시전부락을 공격한 사건을 그린 전쟁도인데, 현재 세 점이 전하며, 이 그림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 학위 논문도 있다.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에는 여진족과의 전투에 참전한 장수 68명의 이름, 관직, 자(字), 본관 등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순신을 비롯하여 선거이, 김억추, 원유남, 원균, 황진, 이지시, 이경록 등 임진왜란 시기 활약한 많은 장수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선거이 영정 - 자료출처: 전남인터넷신문

 

​선거이는 한산도대첩에도 참전하였다. 『진도군읍지』의 「선생안」에 따르면 그는 1591년 3월부터 1593년 1월까지 진도군수를 지냈는데, 당시 진도는 전라우수영에 속한 고을이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은 진도군수 선거이가 한산도대첩 때 포위망을 벗어나서 달아나는 왜선을 쫓아갔지만 따르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는데, 이 전투에 참전한 총 73척의 왜선 가운데 도주한 14척을 쫓아갔던 조선 수군의 장수가 바로 그였던 것 같다.

 

​선거이가 행주대첩에도 참전한 사실은 『선조실록』과 『난중잡록』 등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선거이는 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성선씨오세충의록』과 몇몇 읍지 등의 후대 문헌에는 그가 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선조실록』이나 유성룡의 『징비록』 등과 같은 당대 사료에 실린 울산성 전투 관련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1596년경에 선거이가 매우 위태로운 병을 앓고 있었다는 기록이 여러 사료에 남아있다. 다음은 해당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 이순신, 『난중일기』, 1596년 9월 24일

 

맑았다. 일찍 출발하여 선 병사(선거이)의 집에 이르니 선의 병이 아주 심하고 위태로워 걱정스러웠다. 저물녘에 낙안에 이르러 숙박을 하였다.

 

2. 『선조실록』 권82, 선조 29년(1596년) 11월 7일 기해 3번째 기사

 

상(선조)이 이르기를 "선거이는 병이 있는가?"라고 하니, 이산해가 아뢰기를 "중풍을 앓은 지 오래 되었으므로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3. 이원익, 『오리집』별집권1, 「우상시인견진사(右相時引見秦事)」, 「병신십일월초칠일(丙申十一月初七日)」 (1596년 11월 7일)

 

상(선조)이 이르기를 "선거이는 병 때문에 임용할 수 없는가?"라고 하니, 공(이원익)이 아뢰기를 "충청수사 때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半身不收)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선거이는 1595년 초에 충청수사가 되었다.

 

​위 세 기록을 종합해보면 선거이는 중풍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중풍은 병증이 심한 경우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그리 쉽지 않은 병이다. 선거이가 중풍을 극복하고 1598년 제2차 울산성 전투에 참전하였다는 기록은 그 신빙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전쟁 영웅이었던 그의 마지막이 어떠하였는지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점이 매우 아쉽다.

 

 

[​참고자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

디지털장서각, 선종한(宣宗漢)의 『보성선씨오세충의록(寶城宣氏五世忠義錄)』

이재호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연구』, 2013년, 석사학위논문

『진도군읍지(珍島郡邑誌)』, 「선생안(先生案)」

한국고전종합DB,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亂中雜錄)』

한국고전종합DB, 이원익(李元翼)의 『오리집(梧里集)』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4.12 01:28 수정 2024.04.12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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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