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

곽흥렬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진실인 거야

 

어느 대중가요 가수가 외쳐 부르는 사랑 노래의 한 구절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느니 ‘사랑은 얄미운 나비’라느니 따위의 경박스런 문구들에 비해 얼마나 단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사랑은 진정 장난이 아니고 진실인가 한다. 

 

한 소절의 유행가 가사가 때로는 백 마디의 설교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수가 있다. 예의 노랫말 가운데서 ‘사랑’ 대신에 ‘결혼’으로 바꾸어 넣고 싶은 장면을 보고 난 뒤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주례사가 끝나고 양가 혼주의, 하객에 대한 답례 인사가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어차피 예전 같기를 바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아줄 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사회자의 목소리에서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순서로, 신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무슨 말이 나오려나, 하객들은 일제히 사회자의 입을 향해 시선을 모은다.

 

“신부, 신부는 만일 신랑한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글쎄요, 한 120점?”

 

머뭇머뭇하던 신부의 입에서 수줍게 대답이 떨어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자가 명령을 내린다. 명령이라지만 다분히 농조弄調에 가깝다.

 

“칭찬이 과하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100점을 제하고 나머지 20점은 벌로써 신랑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겠습니다. 한 점당 1회씩 총 20회입니다. 신랑, 팔굽혀펴기 시~작” 

 

주문한 대로 완수해 내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도 연신 싱글벙글거리는 신랑. 벌칙을 받으면서까지 퍽 기분이 고조된 듯 즐거운 표정인 걸 보면 역시 신부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신랑이 임무를 끝내자, 이번에는 하객들을 향해 사회자의 또 다른 주문이 이어졌다.

 

“여러분, ‘뽀뽀뽀 친구’라는 동요 다 아시죠. 자, 함께 그 노래를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신랑 신부는 ‘뽀뽀뽀’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계속 뽀뽀를 하는 겁니다.”

 

그 많은 하객들 앞에서 즐거운 민망함으로 연신 입맞춤을 해대는 신랑과 신부, 코미디도 저런 코미디가 있을까 싶다. 불현듯 그 전에 본 어느 결혼식장의 광경이 떠올랐다. 

 

“신랑은 만세를 부르며 신부를 향해 ‘내 아를 낳아 도!’를 세 번 복창합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주문을 하자, 그 주문에 따라 신랑은 주저 없이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식장이 떠나갈 듯 우렁찬 목소리로 되풀이 외쳐대었다. 

 

“내 아를 낳아 도!”

“내 아를 낳아 도!”

“내 아를 낳아 도!”

 

내 아이를 낳아 달라는 경상도식 표현에 와르르 폭소가 터져 나와 장내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여기가 무슨 독립운동 단체의 집회장인가, 만세 삼창을 부르게.’ 씁쓸한 생각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요사이 결혼식에 참석해 보면, 별의별 깜짝쇼로 배꼽을 움켜잡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마치 무슨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일인지 아둔한 나로서는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다만 사모관대, 원삼 족두리 차림의 신랑 신부가 집례자의 *홀기笏記 구령에 따라 경건하고 엄숙하게 식을 올리던 전통혼례식장의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닐 줄 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때와 장소가 있는 법.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새기는 가장 성스러운 순간이 이처럼 가벼이 다루어져서는 좀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사용하는 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인가. 우리의 전통적 용어인 ‘혼례식’ 대신 일본식 용어인 ‘결혼식’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자못 진지하고 엄숙해야 할 인생의 중대사가 장난기 다분한 한 편의 코미디로 변질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결혼식이 하나의 일회성 이벤트처럼 행해지다 보니 그에 따라 결혼생활마저 종잇장같이 가벼워지고, 그 연장선상에서 걸핏하면 남남으로 갈라서고 마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은 아닌지…….

 

어느 예식장에서의 결혼 풍속도를 보면서 떠올린 씁쓰레한 단상이다. 

 

*홀기: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4.12 02:10 수정 2024.04.12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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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