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로렐라이 언덕

이순영

젊은 날은 쓸쓸해도 아름답고 외로워도 아름답다. 슬프면 슬픈 대로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모든 것을 시간에게 맡겨놓아도 괜찮은 시절이다. 젊어서 그렇다. 젊을 땐 열려 있는 가능성 안에서 천방지축 나대로 탈이 없다. 철학에 시비 걸고 문학에 빠져도 보고 종교도 의심해 보면서 영혼이 성장해 나간다. 그런 일탈이 없다면 젊음은 젊음이 아니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 맺는 것과 같다. 애늙은이처럼 인생 다 안 것처럼 까불다가 정작 인생은 하나도 모르는 바보가 될 확률이 높다.

 

젊은 날 로렐라이 언덕을 부르며 마음속에 라인강이 있는 독일을 한 번 가보겠노라고 다짐하곤 했다. 쉽고 명쾌한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슴 속에 콕콕 박히는 시어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다가 시를 읊다가 하면서 로렐라이 언덕에 있을지 모를 그리운 이를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젊은 날이 가고 젊음도 갔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한 없이 초라한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허무해진다. 그렇게 세상이 버거워 힘겨울 때 혼자 입속을 돌아다니는 ‘로렐라이 언덕’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색시

황금빛이 빛나는 옷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그 옛날 라인강 강가를 지나던 사공들이 힘든 노동을 잊기 위해 로렐라이 언덕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아름다운 강과 태양에 잘 구워진 구릿빛 피부의 사공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강은 인간의 젖줄이고 그 젖줄에 기대 살아가는 인간은 강만큼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도 로렐라이 언덕을 바라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 옛날 노동하던 선원들의 애잔함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났을 것이다. ‘로렐라이 언덕’은 가슴을 박힌 그리움과 라인강의 아름다움이 절절하게 녹아난다. 하이네의 시가 마음을 치유하는데 탁월함이 발휘된 것이 ‘로렐라이 언덕’인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사랑이나 외로움, 연인, 낭만, 그리움 등이 인간 내면에 가득 심겨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아무리 짖고 까불어 봐야 인간은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이나 성직자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상이나 이성은 그다음의 일이다. 태어났으면 사는 게 본질이고 살면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마음에 심겨 있는 본질을 다해 사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삶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유대계 가문에서 1797년 태어난 하이네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열네 살에는 나폴레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역사와 문학 공부에 관심을 두었다. 하이네는 본 대학, 괴팅겐 대학, 베를린 대학 등 대학을 3번이나 바꾸면서 적성을 찾았지만, 결국엔 법학박사가 된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를 위한 정치 투쟁도 활발하게 했다. 그리고 시인과 극작가로 문단에 발을 내디디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1826년 ‘여행 그림들’을 출간하고 그다음 해 ‘노래들의 책’을 출간한다. ‘노래들의 책’은 독자들의 반응이 없다가 나중에 로베르트 슈만을 필두로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가곡으로 작곡해서 열광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하이네는 괴테, 슈텔른, 마르크스, 헤겔, 뷔르거 등 사회의 정신적 지도층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 덕분에 하이네의 문학세계는 더 넓고 깊어졌다. 하이네는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러다가 혁명의 열기가 식지 않은 자신의 이상향인 프랑스로 이주해 버린다. 사람들은 괴테 이후 유럽 전체에서 흥행한 유일한 독일 문학가라고 칭송했다. 하이네는 ‘괴테의 요람에서 태어나 죽음으로 끝났다’라고 자신을 스스로 평가했다. 하이네는 꾸준히 독일어로 작품을 쓰면서 ‘청년독일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자유주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의 지평을 넓혀갔다. 하이네는 ‘회상록’에서 “이기주의의 성경인 로마법 대전은 얼마나 끔찍한 책인가”라고 비평한다. 

 

하이네는 파리에서 구둣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18세 연하의 여성 마틸드와 결혼했지만, 자식은 두지 않았다. 신경계통 문제로 상반신이 마비되어 ‘침대무덤’에 갇히고 만다. 시력도 계속 나빠졌지만 정치참여도 활발하게 하고 작품 활동에도 전력을 다했다. 삼촌의 후원으로 그럭저럭 잘 살았지만, 삼촌이 사망하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이네는 40여 년 병마와 싸우다가 1856년에 5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독일의 자랑 크리스티안 요한 하인리히 하이네가 우리 가슴에 남긴 ‘로렐라이 언덕’은 지금도 입속을 돌아다니며 허밍을 하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4.18 10:16 수정 2024.04.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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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