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 칼럼] 임진왜란 시기 전공을 세운 향리의 면역 교지

윤헌식

임진왜란 시기 조선 조정은 나라 안으로 쳐들어온 일본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두 수단을 동원하였다. 양인이 아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공을 세운 경우 면천(免賤)이나 면향(免鄕)을 허락하는 문서를 내려준 것도 그러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면천은 천인의 신분을 면제해주는 것을 말하며, 면향은 향리(鄕吏)의 업무인 향역(鄕役)을 면제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임진왜란 시기 면천과 면향의 사례는 『선조실록』과 같은 당대 사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임진장초』에도 면천 공문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공을 세워 면향 교지를 받은 향리의 이름도 나타나는데, 그 공문의 실물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어서 상당히 주목할만하다. 아래는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을 옮겨 놓은 것이다.

 

 

 

『난중일기』, 1593년 8월 6일

 

맑았다. 아침에 이완이 송한련, 여여충과 함께 도원수(권율)에게 갔다.

 

[원문] 初六日丁亥 晴. 朝 李緩一時宋漢連呂汝忠 徃都元帥處.

 

 

위 일기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에 주둔하던 시기의 기록으로서 이완(李緩), 송한련(宋漢連), 여여충(呂汝忠)이 조선 수군과 관련이 있는 인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송한련은 『난중일기』에 여러 차례 이름이 나타나고 『임진장초』에도 군관으로서 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여여충의 이름은 『난중일기』에서 위 일기에 딱 한 차례 나타나지만 다른 사료에 다시 그 이름이 등장한다.

 

1757년~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곡성(谷城)」의 「인물(人物)」은 '여여충이 향리의 신분으로서 한산도에서 공을 세워 일등의 군공을 인정받아 교지를 내려 그 역을 면제받았다(呂汝忠 以鄕吏 壬辰亂 閑山島戰立功 參一等軍功 命賜敎旨永世免役).라고 기록하였다. 곡성은 임진왜란 시기 전라좌수영이나 전라우수영에 속했던 고을은 아니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곡성의 향리였던 여여충이 수군으로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것이다.

 

『경국대전』의 「예전」에 수록된 ‘향리면역사패식’(왼쪽)과 여여충의 향리면역 교지 내용(오른쪽) - 자료 출처: 「조선시대 賜牌의 발급과 문서양식」(박성호, 2012, 『고문서연구』 제41호)

 

여여충이 한산도에서 세운 전공을 인정하여 향리의 역을 면제하는 교지가 지금까지 전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교지를 자세히 다룬 논문도 나와 있으므로 학술적인 고증도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는 향리의 역을 면제할 경우에 작성하는 교지(敎旨) 양식인 ‘향리면역사패식(鄕吏免役賜牌式)’이 규정되어 있는데, 여여충이 받은 교지는 현전하는 거의 유일한 향리면역사패로서 위 법전에 규정된 ‘향리면역사패식'과 그 형식이 정확히 일치한다. 

 

여여충 이외에도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종종 관련 사료나 유물이 현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여지도서(輿地圖書)』

박성호, 2012, 『고문서연구』 제41호, 「조선시대 賜牌의 발급과 문서양식」, 한국고문서학회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4.19 10:55 수정 2024.04.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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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