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왜, 모방하여 신춘문예에 응모했을까

신기용

2023년 신춘문예 동시 가작 가운데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을 모방한 사례가 있다. 여러 문인과 함께 이 가작 동시를 읽어 보았다. 설왕설래했다. 이를 지면을 통해 비평한 문학평론가도 있다. 문학평론가 김관식이 계간 “문예창작”(2023, 봄호)에 발표한 평론에 주목해 본다.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없는 가작 동시 ‘점자블록’은 장애인들의 편의 시설인 점자블록을 하얀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동시이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 구절을 일부 모방한 작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일부)”처럼 고딕체의 통사 구조를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다. 심사평에서 김춘수의 시 「꽃」의 통사 구조를 모방한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심사 위원이 김춘수의 시 ‘꽃’의 통사 구조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포착 못 했거나 모방 시이지만, 다른 응모자들의 시보다 우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본다. 

 

모방 동시를 가작으로 뽑고 상을 준 신문사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응모 과정과 심사 과정은 투명했을까? 많은 의문이 든다. 매우 궁금해서 이메일로 모방 동시라는 것에 대한 인지 여부만 파악하기 위해 질의하였다. 답변은 없었다. 사실 관계에 대해 보완 취재는 하지 않았다. 가작 동시 자체가 증거이고 증명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먼저 모방 동시에 관한 심사평을 읽어 본다.

 

‘점자블록’은 다른 응모작들에 비해 신선한 발상과 간결한 언어 구사가 돋보였다. 시각 장애인은 뒤로 숨기고 지팡이와 점자만을 전면에 내세워 존재의 관계성에 주목한 점이 특별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존재의 힘이 점자처럼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점이다. 다만 시의 전개가 단조로운 이미지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점은 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가작으로 선정한 핵심 이유가 “신선한 발상”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모방한 동시가 “신선한 발상”이라는 논리로 심사평을 쓴 것일까? 아니면 심사할 때 모방한 동시인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까?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모방한 동시를 신춘문예 수상작으로 뽑은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자칫 표절 의혹으로 번질 수 있는 문제이다.

 

김춘수의 ‘꽃’과 모방 동시 ‘점자블록’을 비교하여 읽어 본다. 굵은 글씨로 표기한 시행에 주목해 본다. 통사(문장) 구조를 대입해 보면 모방 동시임을 읽을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하얀 지팡이가

 두드리기 전에는

 

 등뼈처럼 길게

 이어진

 점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팡이가

 

 

 톡

 

 

 토

 

 

 톡

 

 톡

 두드리자

 

 점자는 마침내

 길이 되었다.

 

 안내견 없이도

 갈 수 있는…….

 -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가작 동시, ‘점자블록’ 전문

 

유명한 시를 모방한 동시로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인의 윤리적 문제로 한정할 성질이 아닌 듯하다. 이를 뽑은 신문사에도 깊은 성찰이 필요한 문제일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다. 분명한 것은 해당 신문사의 신춘문예 동시 부문의 첫 출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듯하다. 왜, 유명 시를 모방한 동시로 신춘문예에 응모했을까? 심사 위원과 신문사는 왜, 유명 시를 모방한 동시를 뽑았을까?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4.24 08:49 수정 2024.04.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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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